세계증시가 동반폭락한 이후 조정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조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나라마다 좀 다르다.

미국은 증시폭락이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조만간 회복될 것이란 분위기가 우세하다.

반면 아시아는 경제가 아주 어려운 시점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터졌다는
점에서 향후 전망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아시아권의 불안은 세계증시폭락의 진원지가 아시아경제의 "심장" 구실을
하는 홍콩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홍콩은 아시아 전체 경제에 흐르는 자금을 빨아들였다 배분하는 "펌프"
역할을 하는 금융도시.

따라서 이런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아시아 전역의 경제가
위축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경제적인 중요도가 떨어지는 태국 등 동남아권의 금융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시각이다.

홍콩당국은 여전히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둥젠화(동건화) 홍콩행정장관은 "홍콩 경제기반은 여전히 건전한 상태"라며
"홍콩달러의 미달러연동제(페그제)를 앞으로도 계속 고수하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물경제와의 계리가 큰 페그제를 계속 유지할 경우 홍콩경제가 많은
주름살을 줄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경제위기가 일시적인 것이라 구조적인 원인에서 발생했다는 측면도
아시아경제의 먹구름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구조적인 문제의 핵심은 홍콩의 중국반환.

지난 7월 중국반환을 전후에 한껏 올랐던 홍콩의 주가는 홍콩의 경제적
요인이 아닌 "중국반환"이란 정치적요인에 의한 것이었고, 지금은 그같은
거품이 꺼지고 있는 과정이란 분석이다.

이른바 "레드칩(중국관련주식)"이 초강세를 보였다가 급락, 홍콩증시붕괴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금융위기는 아시아 최대의 경제강국인 일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일본의 은행들이 아시아에서 운용하는 자금은 은행당 2~4조엔 정도며
대부분의 자금이 홍콩시장을 통해서 움직인다.

따라서 홍콩금융시장의 위축은 곧바로 일본은행들의 위기로 이어진다.

최근 일본증시폭락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일본은행들이란 점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그렇지 않아도 일본경제회복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홍콩부실"이 추가될 경우 가뜩이나 위축된 일본경제는 어쩌면
회생불능의 상태로 까지 치닫을 가능성도 있다.

홍콩위기는 "떠오르는 시장"인 중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5대전대이후 장쩌민(강택민)체제가 구축되면서 국영기업의 사유화
를 경제성장의 핵심과제로 잡고 있다.

국영기업의 사유화에 필요한 자금은 활황세를 보이던 홍콩증시에서 끌어
대려는 구상이었다.

결국 홍콩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 중국의 시도하는 자본주의식 경제개혁도
공념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홍콩위기가 터지면서 국제금융기관들이 모국인 중국에 대한 신용공여를
줄이고 대출금리를 올리는 것도 중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중국정부가 지난주에 발행한 5억달러어치 채권의 경우 발행당시 기준금리
(미국 정부채권)에 붙는 가산금리는 0.68%포인트였으나 지금은 1.70%포인트
까지 올라가 있다.

홍콩위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면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의 주도국가들도
위기탈출이 어렵게 된다.

이 경우 이들 국가와의 경제연관도가 높은 한국 등 다른 아시아국가들의
경제도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아시아증시의 "조정"이 미국증시의 "조정"과는 다를수 있다는 분석이다.

< 육동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