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프로세서업체인 미 사이릭스가 용꿈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컴퓨터의 두뇌격인 마이크로프로세서시장에서 거인 인텔을 거꾸러뜨린다는
내용이다.

이는 텍사스주 리처드슨에 위치한 본사로비에 전시해 놓은 "묘비"에 함축돼
있다.

묘비에 새겨진 "인텔인사이드"란 문구대로 인텔을 무덤속에 처넣고 영원히
잠들게 하겠다는 것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지 7년된 작은 업체의 당찬 꿈이다.

사이릭스의 꿈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이릭스가 성장해 온 과정이 그 가능성을 확인해 준다고 강조한다.

사이릭스는 지난 88년 제럴드 로저스와 톰 브라이트맨이 설립했다.

둘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자이다.

벤처기업투자가인 세빈 로젠과 베리 캐시로부터 빌려온 400만달러가 사업
밑천의 전부였다.

당시만해도 용기는 있지만 미친짓거리에 불과한 행동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두 사람은 그러나 뭔가를 보여주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2년만인 90년에 2,5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지난해
에는 2억4,600만달러를 거둬들였다.

4년만에 매출을 10배가량 늘린 셈이다.

이같은 매출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사이릭스가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다.

지난해 95억달러규모의 시장에서 3%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앞선 기술력으로 신제품을 생산, 신규수요를 창출해가고 있는 인텔의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 시장에서 85%를 석권하고 있다.

독점업체나 마찬가지다.

최대 경쟁업체인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MD)가 10%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이릭스는 그러나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최대 무기는 기술력이다.

사이릭스는 지난 90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수학적 계산기능을 보조하는
코프로세서를 선보였다.

이어 92년에는 컴퓨터 기능을 486급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386호환칩을
개발했다.

인텔이 89년4월 486칩을 발표했을 때 사이릭스가 이에 버금가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칩(486DX)을 개발하기까지는 3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는게 정설이었다.

사이릭스는 그러나 그해 7월 5x86을 내놨다.

인텔의 486슬롯에 끼워 사용할 수 있는 이 칩은 컴퓨터성능을 저가격에
펜티엄급으로 높여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인텔이 새로운 칩을 생산하면 그 칩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사이릭스는 독자적인 기술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사이릭스는 또 인텔이 곧 발표할 펜티엄프로(P6)보다 성능이 좋은 M1칩으로
무장하고 있다.

M1칩은 인텔의 펜티엄보다 처리속도가 30%는 빠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사이릭스는 게다가 모뎀 그래픽카드 사운드카드 CD롬드라이브의 기능을
통합수행할수 있는 멀티미디어칩을 독자기술로 개발중이다.

사이릭스는 컴퓨터생산업체들로부터도 지원받고 있다.

IBM, SGS톰슨, NEC, AST, 애플등 인텔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는 업체들이
사이릭스의 후원자들이다.

사이릭스는 이같은 기술력과 컴퓨터생산업체들의 지원에 힘입어 97년에는
매출을 10억달러로 늘리고 시장점유율도 2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달을 맞춰 떨구려면 별을 겨냥하라. 인텔을 땅속에 묻지 못할지 모른다.
사이릭스는 그러나 적어도 인텔에 의해 농락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이릭스의 최고경영자 제럴드 로저스의 말이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