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집중탐구

국내 비철금속 독보적인 1위업체
삼각 신사업으로 여의도 원픽으로 부상
지분 갈등 가능성도 개미에겐 호재?


우리나라 산업계엔 '공동 창업'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더러 있습니다. 구씨와 허씨가 일궈낸 LG그룹이 대표적입니다. 고(故) 구인회 LG 창업주는 허만정 창업주와 함께 LG그룹의 모체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세웁니다. 이후 구씨와 허씨의 동업은 구인회-허만정, 구자경-허준구, 구본무-허창수에 이르기까지 3대 간 이어집니다. LG, LS, GS가 모두 이렇게 한뿌리에서 탄생한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최근 계열분리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는 또 다른 그룹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고려아연이 속한 영풍그룹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풍문고도 영풍그룹 소속이 맞습니다.) 영풍그룹은 고 장병희 회장과 최기호 회장이 1949년 공동창업한 수산물 수출회사 영풍기업이 출발점입니다.
[마켓PRO]최대 실적·신사업·경영권 분쟁 징후…3박자 갖춘 고려아연
비철금속을 가공생산하는 석포제련소를 설립한 영풍은 아연, 납 등을 제련하는 고려아연을 설립하며 덩치를 키웁니다. 2대째 이어지고 있는 장씨와 최씨의 공동 경영은 영풍은 장씨가, 고려아연은 최씨가 맡는 형태로 굳어집니다. 하지만 구씨와 허씨의 아름다운 이별처럼 3대까지 이어진 공동 경영이 깔끔한 계열분리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최씨가 경영하고 있는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장씨(㈜영풍) 일가가 손쉽게 알짜 회사를 넘겨주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성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의 매력도가 크게 상승할수록 아름다운 이별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겠죠. 하지만 주식으로서의 가치는 되레 높아질 수 있습니다. 큰 이목을 끌지 못했던 비철금속회사가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선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아연 사들인 연기금

연기금이 이달 들어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이 고려아연입니다. 삼성증권은 주간 추천종목 10개 종목에 고려아연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켓PRO]최대 실적·신사업·경영권 분쟁 징후…3박자 갖춘 고려아연
올 하반기 고려아연의 주가 상승률은 약 28%에 달합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이 3%대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질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올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데다 탄탄한 신사업을 확보하고 있는 점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여의도에선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남아있다며 추천주로 고려아연을 꼽고 있죠.

고려아연은 아연, 연, 금, 은, 동 등을 제조 및 판매하는 종합비철금속제련회사입니다.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은 국내 아연 시장 9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고려아연의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 2조8513억원, 영업이익은 39.7% 증가한 381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은 시장 기대치를 7.8% 웃돌았습니다. 아연 금속 가격이 올랐고, 아연정광의 제련수수료(TC) 상승한 덕입니다. 환율 효과도 영향을 줬습니다.

신사업 트로이카 장착

최대 실적 발표 이후 시장에서 여전히 고려아연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미래 사업 때문입니다. 고려아연은 2차전지·신재생에너지·자원순환 사업에 2030년까지 10조원가량을 투자하는 등 이처럼 사업재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이 "재생에너지, 2차전지, 자원순환 사업 투자를 공개하며 중장기 성장 모멘텀 탑재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마켓PRO]최대 실적·신사업·경영권 분쟁 징후…3박자 갖춘 고려아연
우선 기존에 생산하던 연이 폐배터리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연의 경우 재활용이 용이하기 때문에 폐배터리를 이용한 재생연 생산량의 증대가 예상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강화로 공해방지 설비에 대한 투자가 절실히 요구되나 당사의 경우는 연제련시설이 DRS공법을 사용한 최신시설로 환경오염 방지에 역점을 두었으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도 합니다. 실제 3대 신사업 측으로 자원순환 사업을 꼽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 업체인 이그니오홀딩스의 지분 73.2%를 인수하기도 했죠.
[마켓PRO]최대 실적·신사업·경영권 분쟁 징후…3박자 갖춘 고려아연
고려아연의 실적은 원자재 가격과 동행해왔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는 만큼 2분기 사상 최대 실적이후 3분기부터는 실적이 꺾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3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는 2980억원으로 전분기(3812억원)보단 크게 감소하지만 전년 동기(2658억원)와 비교해선 증가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물론 올해 연간 이익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자재 가격이 꺾이더라도 실적을 떠받칠 수 있으려면 자원순환 사업을 비롯해 신사업이 빠르게 성장해줘야 합니다.

가장 힘을 보탤 수 있는 사업군은 2차전지 소재사업입니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차전지 소재 관련 신사업이 중장기적으로 주가에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마켓PRO]최대 실적·신사업·경영권 분쟁 징후…3박자 갖춘 고려아연
목표주가를 기존 69만원에서 75만원으로 상향조정한 케이프투자증권은 목표주가 상향 이유에 대해 "2차전지 소재 사업 확대와 제련소 증설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규익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리사이클링 부문에서 7월 인수한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로부터 구리를 공급받아 동박 제조에 활용할 예정"이라며 "이그니오와 한국전구체주식회사를 활용해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2차전지 소재 동박 사업에 대해서는 "자회사 케이잼을 통해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며 "10월부터 1.3만톤 규모의 생산 라인을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수익 실현은 2023년부터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지분 다툼 가능성도 좋은 재료"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곳곳에서 풍기고 있는 것도 주가에는 긍정적인 요소로 꼽힙니다. (물론 한진칼처럼 분쟁이 사실상 종식되자 주가가 20% 넘게 급락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영풍그룹은 장씨와 최씨의 지분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하지만 지분상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쪽은 장씨입니다. 고려아연을 실제 이끄는 최윤범 부회장의 경우 지분율이 1.82%(2022년 반기보고서 기준)에 불과합니다. 영풍을 이끄는 장형진 회장(3.83%)보다 낮습니다. 여기에 장 회장 측이 이끄는 ㈜영풍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27.49%)입니다.
[마켓PRO]최대 실적·신사업·경영권 분쟁 징후…3박자 갖춘 고려아연
최 부회장을 중심으로 고려아연의 계열분리가 이뤄지려면 장 회장 측의 적극적인 지분 정리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최 부회장이 투자금 마련을 위해 지난 18일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한화H2)를 대상으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 한화H2에 지분 5.0%를 새로 발행해 4700억원을 조달하자. 영풍그룹 계열사 코리아써키트와 에이치씨는 지난 23∼26일에 걸쳐 고려아연 주식을 각각 5천602주, 800주 장내 매수했습니다. 장 회장 측이 오히려 고려아연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면서 증권가에서 향후 추가 지분 다툼을 예상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상증자 이사회 당시 고려아연 최대 지분을 보유한 ㈜영풍 장형진 부회장이 불참한 것이 유상증자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 아니겠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고려아연의 상승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고려아연에 대해 "전통적인 사업을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으로 신사업으로 재편하는가가 향후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핵심인데 고려아연의 경우 과감한 투자와 함께 성공적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라며 "지분 다툼의 불씨가 남아있다는 점도 개인투자자들에겐 여전히 매력적인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려아연 프로필(9월14일 종가기준)
현재 주가:
62만4000원
PER(12개월 포워드): 13.82배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 1조2717억원
적정주가: 69만원(7개월전)→75만원(현재)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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