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에도 0을 곱하면 반드시 '0'이 된다. 바로 '제로(0) 법칙'이다. 하나의 투자자산에 '몰빵'하는 것은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성공해야지 아홉 번 성공하고 마지막 한 번 실패하면 그 전에 이룬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격언과 함께 포트폴리오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투자바구니'란 의미의 포트폴리오는 주식 채권 현금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나이와 투자성향,재산상태,가족상황,투자기간 등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달리 짜야 하며,상황 변화에 따라 정기적으로 비중을 조절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내게 맞는 포트폴리오는

2008년 금융위기는 포트폴리오 투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계기가 됐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리서치 팀장은 "2년 전 러시아펀드에 '몰빵'했다면 여전히 반토막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며 "국내외 주식과 채권,원자재 등에 분산하면 위험을 낮추면서 기대수익률을 높일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출렁이는 과정에서 한 군데에만 투자할 경우 돌이키지 못할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분산하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 소장은 "연필 한 자루는 쉽게 부러지지만 연필 한 다스가 되면 웬만해선 부러지지 않는다"고 비유했다.

포트폴리오 투자는 장기투자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한 가지 자산에만 투자하면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장기투자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오윤관 동부증권 신논현역 지점장은 "주식이나 채권에 분산해야 주식이 오를 때 수익이 나 좋고,주가가 빠져도 채권 쪽에서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어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맞는 포트폴리오를 짜는 데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강 소장은 나이,재산상태,가족상황,투자성향,투자기간 등 다섯 가지 요소를 꼽았다. 김도현 삼성증권 투자컨설팅팀 연구위원은 "비슷한 나이라도 재산상태를 따져야 하고 위험선호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증권이 제시한 구체적인 사례로 공격적 성향의 30대 초반 투자자라면 △국내주식형 58.3% △해외주식형 38.1% △해외채권형 3.6%로 분산해 연 12.54%의 기대수익률을 갖는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위험중립형 투자자는 △국내주식형 26.3% △해외주식형 13.7% △국내채권형 36.9% △대안투자 20.1% △현금성자산(MMF) 3.0%로 나누면서 기대수익률은 연 8.17%로 낮추게 된다.

◆포트폴리오는 카멜레온

포트폴리오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시장 변화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포트폴리오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것을 주문한다. 강 소장은 "선진국에 비해 시장 변동성이 큰 국내에선 6개월에 한 번씩 조정해도 좋다"고 말했다.

오 지점장은 자산가치 변화에 따른 비중 조절을 강조했다. 예컨대 자산 1000만원을 주식형과 채권형 펀드에 50 대 50으로 투자했을 때 시장이 올라 주식형이 600만원,채권형이 520만원으로 증가했다면 주식형에서 40만원을 채권형으로 옮겨 절반씩 다시 맞추는 식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대열 팀장은 "특정 자산의 전망이 예상보다 나빠지면 다른 투자처로 옮겨야 한다"며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수수료나 보수를 펀드별로 받는 대신 고객의 전체 자산에 따라 일정 보수(fee)를 받고 자문해주고 펀드를 자유롭게 갈아탈 수 있는 '펀드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 투자 기간별로 주식(주식형펀드) 비중을 조절할 수도 있다. 투자기간이 1년이면 주식 비중을 10%,2년은 20%로 1년이 늘어날 때마다 10%포인트씩 높여 5년이면 50%를 주식에 배분하는 것이다. 장기투자로 주가변동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따라 변하는 라이프사이클펀드

포트폴리오 수시 조정과 별개로 연령대가 높아짐에 따라 사전에 정하는 투자비율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채권이나 현금 비중을 확대해 가는 것이다.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라이프사이클펀드는 나이에 따른 자산 배분을 한 펀드 내에서 해결한다. 포트폴리오를 짜기에 자산 규모가 너무 작을 경우 투자를 고려해 볼 만하다.

나이와 관련해선 '100-나이'의 법칙이 있다. 40대의 경우 100에서 40을 뺀 60%를 최대 주식 비중으로 정한다는 의미다. 김균 아이니즈컨설팅 연구소장은 "주식에 대한 장기투자의 우월성이 입증되면서 최근에는 '110-나이'까지 주식투자 비중을 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델리티 라이프사이클펀드'는 연령대별로 주식 비중을 달리하는 펀드의 효시다. 이 펀드는 가입 초기에는 주식 위주의 공격적인 투자로 시작해 점차 주식,채권,현금을 혼합해 보수적으로 재조정한다. 만기 무렵에는 채권과 현금 중심의 안정적인 자산으로만 구성된다. 1996년 라이프사이클펀드로 미국에서 출시된 '피델리티 프리덤펀드'는 작년 말 자산 규모가 1002억달러(약 110조원)까지 급성장했다.

국내에도 주로 연금 관련 상품으로 60여종의 라이프사이클펀드가 있다. 장석진 미래에셋증권 홍보팀장은 "미래에셋 라이프사이클펀드는 연간 최대 2회에 걸쳐 펀드 내 주식 비중을 최대 90% 이상에서 최소 40% 이하까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정환/박민제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