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비를 넘겼다고 선언한 지 한 달 만에 외화유동성 불안이 재현될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올 들어 11거래일만에 100원 가까이 폭등했고 해빙 양상을 보이던 은행권 외화조달도 한국물 외화채권의 신용도 악화 등의 여파로 다시 얼어붙을 기미다.

다음 달 167억 달러 가량을 정부와 한국은행에 상환해야 하는 은행들은 씨티그룹 등 세계적 금융그룹의 부실 확대 여파로 2차 금융위기가 발발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 달러 부족..외환시장 불안

18일 외환시장에서 따르면 지난 16일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58원을 기록했다.

작년 말 이후 11거래일간 상승폭은 98.50원(7.8%)으로 작년 한 해 상승폭 323.40원에 비해 3분의 1에 육박하고 있다.

환율은 작년 11월24일 1,513원에서 정부의 다각적인 시장개입으로 작년 말 1,259.50원까지 떨어졌지만 올 들어 국내외 주가 급락 등의 여파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15일에는 1,400원에 근접하기도 했다.

연말을 넘기면서 해빙 양상을 보이던 외화 조달 시장도 다시 경색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새해 들어 돈을 풀어 수익 확보에 나서려던 해외 금융회사들이 씨티그룹과 HSBC, 도이체방크 등 세계적 금융회사의 부실에 대한 우려로 2차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다시 지갑을 닫는 양상이다.

외환스와프 시장에서 현물환과 선물환의 차이인 스와프포인트(1개월물)는 지난 9일 플러스로 돌아서 13일 1.25원으로 오르기도 했지만 15일 -0.50원으로 반락하는 등 불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원화를 대가로 한 달 동안 달러화를 빌리기가 다시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 외화채권 신용도 악화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 외화채권에 대한 신용도는 지난주부터 다시 악화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2014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금리는 15일(현지 시각) 기준 3.86%로 6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이면서 지난 7일에 비해 0.36% 포인트가 상승했다.

이 채권의 가산금리는 작년 10월 27일 7.91%에 달했으나 같은 달 30일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를 계기로 5.59%로 급락했고 작년 말에는 4.04%로 안정됐다.

이달 초 금융시장이 안정을 보이면서 3.5%대로 더 떨어졌었다.

5년 만기 외평채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같은 기간 2.67%에서 3.23%로 0.56%포인트 높아졌다.

CDS 프리미엄이란 채권의 부도 위험을 보상해주는 보험 성격의 파생상품으로, 수수료에 해당하는 프리미엄이 오른 것은 부도 위험이 커졌다는 의미다.

외평채 가산금리나 CDS 프리미엄의 상승은 한국이 외화채권을 발행할 때 조달비용이 비싸진 것으로 외화 수급 여건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은행들의 신용도도 일제히 악화됐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발행하는 5년 만기 외화채권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9일 3.16%까지 낮아졌다가 15일 3.81%로 급등했다.

국민은행의 CDS 프리미엄도 같은 기간 3.38%에서 3.94%로 높아졌다.

◇ 은행권, 내달 달러난 우려

수출입은행이 이달 13일 20억 달러의 해외 채권 발행에 성공하는 등 국책은행의 해외 차입 여건은 작년 9월 리먼 사태 직후에 비해 호전됐다.

하지만 시중은행의 기간물 차입은 여전히 어렵고 공모 시장에서의 채권 발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최근 유럽계 은행이 우리은행에 1억 달러를 빌려주기로 하고도 5천만 달러만 입금하고 절반은 2~3주 후 입금하기로 한 것은 작년 말 자체적인 회계처리 문제와 함께 향후 금융시장 여건 변화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작년 9월 리먼 사태 이후 해외 차입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면 지금은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는 정도"라며 "기간물 차입은 여전히 어렵고 공모발행도 2분기는 돼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차입이 어렵다 보니 은행들은 현재 외화 소요 자금의 상당 부분을 정부와 한국은행이 지원한 자금에 의존하고 있다.

한은과 정부는 당초 계획한 550억 달러 가운데 377억 달러를 풀었으며 한.미 통화 스와프 자금 133억5천만 달러까지 포함하면 총 510억5천만 달러를 공급했다.

이 가운데 상당 금액이 2월에 만기가 돌아온다.

한은이 공급한 자금 가운데 115억 달러가, 수출입은행을 통해 풀린 달러 중 51억9천만 달러가 다음 달 만기다.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이 자금의 만기를 연장해주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은행들은 2차 금융위기 발발 여부와 함께 최근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고 있는 무디스가 실제로 등급을 하향 조정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모 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들의 외화 소요 자금 가운데 90%가량이 정부 자금이어서 정부가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으면 은행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