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해 9월 멕시코 하만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해 9월 멕시코 하만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조(兆)단위 가치의 회사를 '현금박치기'로 사들인 거래는 처음 봅니다."

2017년 3월 11일.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인 하만을 80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9조3400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인수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냈다. 인수대금의 절반가량을 대출로 조달하는 통상적 거래와는 달라 투자은행(IB)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보유 현금이 100조원을 넘어선 삼성전자나 가능한 거래란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하만은 삼성에 인수된 뒤부터 저조한 실적을 냈다. 영업익도 6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절치부심한 하만은 전장 기술 역량을 닦았고 지난해부터 실적으로 결실을 맺었다. 올해는 역대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3일 하만에 따르면 이 회사는 올해 초 슈퍼카 브랜드인 페라리와 디지털 콕핏 제품(자동차 앞좌석에 배치된 디지털 계기판)인 '하만 레디 업그레이드'를 공급하는 내용의 기술·마케팅 파트너십 계약을 맺었다.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등에 이어 페라리까지 뚫으면서 이 회사의 디지털콕핏 사업 입지도 한층 단단해질 전망이다. 고객층이 두터워졌고 덩달아 실적도 불어나고 있다.

하만은 지난해 매출 13조2100억원, 영업이익 8800억원을 올렸다. 지난해에 비해 각각 32%, 37% 불었다. 2017년 삼성전자에 인수된 이후 최대 실적이다. 증권가는 올해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만은 2017년 6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2018년 1600억원, 2019년 3200억원, 2020년 600억원을 기록했다. 들쭉날쭉한 실적으로 주변의 기대를 밑돌았다. 하지만 디지털콕핏과 차량용 오디오, 텔레매틱스(차량 통신시스템) 등에서 성과를 내는 등 삼성그룹 자동차 전장 사업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하만의 디지털콕핏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4.7%로 세계 1위다. 작년 생산량은 디지털 콕핏 생산량은 833만4000개로 전년 대비 20.3%(140만6000대) 늘었다. 이 회사의 디지털 콕핏 제품은 삼성그룹 계열사의 기술을 품으면서 한층 제품 품질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만 인수를 결정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관심도 상당하다. 지난해 6월과 9월 두 차례 하만의 해외 사업장을 찾았다. 지난해 6월에는 11박 12일 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복귀한 이 회장은 "하만카돈(하만의 오디오 자회사)을 방문해 자동차 업계의 변화를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