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김병언 기자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원자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선 한국도 동맹국 간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 쇼어링’이 시급합니다. 그래야만 외국인 투자도 대거 유치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볼드윈 스위스 제네바국제경제대학원 교수(사진)는 지난 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세계 경제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과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볼드윈 교수는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부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수석 참모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다. 지금도 세계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자문역을 맡으며 글로벌 석학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2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KOTRA가 주관한 ‘2022 외국인 투자주간(IKW)’ 행사의 기조연설을 위해 방한했다.

볼드윈 교수는 세계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 예상 외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 중앙은행(Fed) 등이 당초 계획보다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Fed가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볼드윈 교수의 예측이다.

볼드윈 교수는 세계 경제가 직면한 최대 위협 중 하나로 미·중 갈등을 꼽았다.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관련 정책을 비롯해 미국 정부는 중국 선진 제조업의 부상을 억제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면서도 “수십 년간 세계화를 통해 완성된 공급망을 일시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재·중간재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 대부분을 중국에서 조달받는 현 공급망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꾸기 위해선 중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볼드윈 교수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면 우선 밸류체인별로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물과 소재는 가공 단계가 복잡해 중국 등 어느 국가가 원산지인지조차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공급망 시뮬레이션인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볼드윈 교수의 조언이다. 금융 분야에서 자주 쓰이는 스트레스 테스트는 각종 변수에 따라 금융시스템이 받게 되는 잠재적 손실을 측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볼드윈 교수는 “중국이 수개월 동안 소재·부품 공장을 폐쇄할 경우 예상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개별 기업이 아닌, 정부가 수년에 걸쳐 주력해야만 하는 숙제”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을 앞세운 프렌드 쇼어링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프렌드 쇼어링은 ‘동맹 쇼어링(ally shoring)’에서 파생된 단어로, 동맹국을 통해 공급망 불안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볼드윈 교수는 “한국도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하기 위해선 프렌드 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투자 유치의 관건은 정부 정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며 “한국 정부도 신뢰할 수 있는 FDI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