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아직 열지 않은 세 개의 '흑자 주머니'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김범석 쿠팡 창업자(쿠팡Inc 대표)를 ‘경험’한 이들의 그에 대한 두 가지 공통된 평가가 있다. 워커홀릭(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고, 뱉은 말은 지킨다는 것이다. 실제 범킴(김 대표의 영어식 호칭)은 물류센터 달랑 하나 갖고 있던 시절에 전국을 커버하는 로켓배송을 구현하겠다며 임직원들에게 호언장담했다. 이 말을 믿은 이들은 끝까지 남아 쿠팡Inc의 뉴욕 상장에 따른 과실을 공유했다. 물론, 떠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범킴의 말을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범킴이 지난달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흑자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건 꽤 의미심장하다. 로켓배송 등 핵심 사업인 상품 유통 부문만(그 외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등은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의 흑자를 말한 것이긴 하지만, 실제 범킴이 그의 말을 실현에 옮긴다면 2010년 8월 쿠팡 창업 이후 12년 만에 흑자 전환을 달성하는 셈이다. 쿠팡처럼 시장 선점, 후(後) 수익 달성 전략을 취한 아마존과 테슬라도 창업 후 흑자로 전환하는데 각각 13년, 16년이 걸렸다.

아마존처럼"수확체증의 법칙을 실현하라"

쿠팡이 아직 열지 않은 세 개의 '흑자 주머니'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범킴의 흑자 공언은 시쳇말로 그의 머릿속에 계산이 이미 끝났음을 의미한다. 핵심은 두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오퍼레이팅 레버리지(operating leverage)와 코호트(cohort)다. 전자는 영업레버리지라고 번역되는 회계 용어다. 삼성전자처럼 대규모 제조시설을 운영하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분석할 때 흔히 쓰인다. 쿠팡도 수조 원의 자금을 투자해 전국을 커버하는 대규모 물류 시설을 짓고 있다. 2020년 70만평 규모였던 쿠팡의 물류 시설 총면적은 지난해 112만평으로 커졌고, 2023년까지 160만평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종업원 월급, 토지 이용료, 감가상각비 등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될 수밖에 없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셈이다. 쿠팡이 영업레버리지를 높이겠다는 것은 고정비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생산효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미다.

쿠팡에서 임원을 지냈던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범킴은 흑자 전환의 원년을 2020년으로 잡았다고 한다. 한국 e커머스 시장의 팽창 속도와 쿠팡 로켓배송의 대응 능력 등을 종합 분석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물류센터 집단감염에 대한 우려로 쿠팡은 로켓 물류의 대동맥을 일시 중단했다. 작년엔 쿠팡의 핵심 물류 기지인 이천 센터가 화마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쿠팡 경영진은 이를 복구하는 데에만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범킴이 2020년 흑자 전환을 자신했던 데엔 이유가 있었다. 쿠팡의 벤치마킹 모델인 아마존이 ‘수확체증의법칙’을 증명한 걸 그는 똑똑히 목도했다. 전통적인 경제학의 개념에서는 수확체감이 정설이다. 기업 단위에서는 물론이고, 경제 전체적으로도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할수록 추가적인 자본의 생산성은 낮아진다는 이론이다. 기계 설비 등 추가 자본을 돌릴 수 있는 노동자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이를 혁신으로 극복했다. 월마트를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을 판매, 지속적인 수요를 창출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임으로써 수익을 달성했다. 제프 베저스는 이를 ‘플라이휠 효과’라고 불렀다. 미국의 빅테크들은 대부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성장했다. 규모가 커지고, 막대한 수익까지 내자 경쟁자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최근 EU(유럽연합)가 빅테크 규제를 위해 법을 제정하고,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들을 ‘새로운 독점’이라고 부르는 것은 역설적으로 수확 체증의 법칙이 작동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쿠팡의 지난해 상황은 정확히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된 한 해였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한 이후 쿠팡 한국법인은 5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를 통해 미국 쿠팡Inc로부터 약 1조8600억원을 조달했다. 이 돈은 대부분 수도권 이남에 물류센터를 짓는 데 투여됐다. 신선 물류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쿠팡은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했다. 지방의 인구 감소로 노동 공급이 원활치 않았던 데다 잦은 이직으로 숙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물류의 효율화 이슈는 쿠팡을 비롯해 쓱닷컴, 마켓컬리 등 대형 e커머스 업체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여러 품목을 한데 모은 묶음 배송이 나은지, 아니면 품목별로 따로따로 보내는 것이 효율적인 인지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다못해 물류센터 내 픽커(picker)들이 상품 바코드를 어떻게 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찍을 수 있는지, 센터에 상품이 들어올 때 이를 신속히 분류하는 방법은 무엇일 지 등에 대해 각 사는 해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범킴이 상품 유통 부분의 흑자 전환을 공언한 데엔 기술적인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와 관련, 쿠팡은 올해 들어 물류의 자동화에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수확체감의 법칙을 깨트릴 해법을 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의 물류 거점에 어떤 물건을 갖다 놓아야 할 지 등에 관한 상품 관리 시스템, 물류 및 배송 근로자들을 위한 동선 최적화, 유류비 등 비용 상승을 막을 친환경 배송 시스템 등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나도 모르는 사이…" 쿠팡에서 돈 더 쓰는 소비자들

오퍼레이팅 레버리지 외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개념은 ‘코호트(cohort)’다. 어학사전엔 특정한 기간에 태어나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의 집단과 같이 내부 동질성이 강하거나 통계상의 인자(因子)를 공유한 이들을 뜻한다. 코로나19 초기에 많이 나왔던 코호트 격리도 비슷한 개념이다. 해외 기업들은 코호트라는 개념을 충성 고객의 숫자와 동향을 살펴보기 위한 지표로 활용한다. 국내 유통업체의 감사보고서 등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던 데이터다. 이와 관련해 컨퍼런스콜에서 김범석 창업자는 “2년 전과 비교해 지난해 매출은 거의 3배 성장했다. 가장 오래된 코호트를 비롯해 모든 코호트의 지출이 지난해 30% 이상 증가했는데 이는 쿠팡의 성장 잠재력이 아직 다 발휘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범킴의 말은 한마디로 쿠팡의 충성고객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정 해 가입한 쿠팡 고객을 동일 집단(코호트)으로 묶고 이들이 최근까지 얼마나 돈을 썼는지를 추출했더니 가입 첫해보다 갈수록 돈을 더 많이 쓰더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이는 범킴이 늘 얘기했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쿠팡의 목표가 실현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코호트 분석을 통한 이 같은 결과는 쿠팡이 올해 흑자를 달성하기 위한 두 번째 ‘비단 주머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쿠팡이 주목하고 있는 코호트는 전통적인 의미의 충성 고객과는 결이 다르다. 이와 관련, 오랫동안 쿠팡을 이용했다는 한 소비자는 “쿠팡은 사악할 정도로 내 소비 심리를 꿰뚫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이 코호트의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핵심 기제는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하는 데이터 자산이다.

쿠팡이 지난달 통합멤버십 가입비를 4990원으로 올린 것은 이 같은 자신감에 근거한 결정이다. 2018년 10월에 통합멤버십 제도를 도입한 이후 3년여 만의 첫인상이다. 아마존 역시 지속해서 멤버십 가입비를 올려왔다. 2018년 6월에 기존 가입자를 포함해 한 단계 가격을 올린 데 이어 올 3월에도 또 한 차례 인상을 단행했다. 쿠팡이 흑자를 달성하기 위한 다음 포석 역시 예측할 수 있다. 한 e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아마존이 그랬듯이 쿠팡도 고객들에게 새벽배송, 당일배송, 익일배송 등 다양한 형태의 배송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세분화하고 약간의 불편을 포인트로 돌려주는 방식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쿠팡 플레이 외에 좀 더 매력적인 ‘구독 경제’ 아이템들을 추가할 가능성도 높다.

범킴의 ‘흑자 주머니’ 중 두 가지, 다시 말해 오퍼레이팅 레버리지와 코호트는 올해 충분히 구현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는 상징적인 수준의 성과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쿠팡이 아마존처럼 지속적인 흑자와 함께 외형을 꾸준히 키우려면 세 번째 ‘비단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 바로 B2B로의 전환이다. 아마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클라우드라는 신규 B2B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180도 달라졌다. 바닥을 기던 아마존 주가는 AWS(아마존웹서비스)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로켓 상승’했다. 아마존은 B2C로 시작했지만, B2B로 성공적으로 전환함으로써 성장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아마존식 B2B는 마이크로소프트, IBM, 오라클, SAP 등 굴지의 IT 기업들이 돈을 버는 방식과 동일하다. 아마존 AWS 없이는 기업 경영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범킴이 마지막 흑자 주머니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