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장외 선전전'에 노동계 "몰상식" …공수 뒤바뀐 타임오프 논의
"한국노총 요구안은 제도의 취지, 실태조사 결과, 글로벌 스탠다드를 벗어난 무리한 요구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하겠다."(한국경영자총협회)

"경총은 회의 참석주체로서 표명할 입장이 있다면 장외투쟁하지 말고 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하라. 사회적대화의 기본을 저버리고 경사노위 위원장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몰상식한 자세다."(한국노총)

지난해 11월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심의 요청으로 논의가 진행 중인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조정을 위한 노사 간의 기싸움이 묘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최저임금 등 사회적 대화 이슈가 진행되다 갈등이 고조되면 장외투쟁에 나서고 주무기관장을 만나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주로 노동계의 '그림'이었습니다. 경영계는 그런 노동계를 향해 '몰상식' '장외투쟁' 등의 용어를 써가며 회의체 복귀를 주장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번 타임오프 논의에서는 공방을 벌이는 노사의 언어와 행태가 기존과는 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의 배경에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노동계의 요구로 논의가 시작됐고, 경영계는 개정 노조법에 따라 마지못해 논의에 참여했으나 '현행 타임오프 한도가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물길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해당 논의를 축구 경기에 비유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지난해 7월 시행한 개정 노조법은 부칙에 법 시행 즉시 '타임오프배 축구대회'를 열어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노조법 부칙 제3조입니다.

[부칙 제3조(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이관에 관한 준비행위) 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제24조의2에 따른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구성을 위한 위원 위촉 등 필요한 절차를 이 법 시행 전에 진행할 수 있다. ②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이 법 시행 즉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가 조합원 수, 조합원의 지역별 분포,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연합단체에서의 활동 등 운영실태를 고려하여 근로시간면제한도 심의에 착수한다.]

이에 따라 경기장이 경사노위에 마련됐습니다. 경영계는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참전했고, 경기 초반에는 예상대로 노동계의 파상공세에 맥을 못추었습니다. 그러다가 경기의 흐름이 뒤집힌 것은 현재 각 기업 현장에서 타임오프를 어떻게 얼마나 활용하는지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서입니다. 실태조사 결과 현행 한도의 21~24% 활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급노조전임자 수를 늘리기 위해 대회 개최를 요구한 노동계로서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물론 노동계에서는 실태조사를 놓고 지역적으로 넓게 분포한 다수 사업장의 노조가 사업장 수가 많기 때문에 약 20% 가량 실제 근로시간 면제 시간이 길어지고, 상급단체에 파견한 노조간부가 있는 노조일수록 실제 근로면제 시간이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태조사 결과를 계기로 경기의 흐름은 경영계가 가져왔다는 게 경사노위 안팎의 중론입니다. 이렇다보니 경영계가 회의장 밖으로 나와 "노동계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선전전에 나선 것이지요.

경사노위는 심의의결 시한이었던 지난 3일 17차 전원회의를 열고 경기를 마무리지으려 했으나 노사 간의 이견만 확인하고, 심판 격인 공익위원들은 '종료 휘슬'을 불지 않았습니다. 이후 9일에 18차 회의를 예고했으나, 경영계 선수 중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연기됐습니다.

경사노위 안팎에서는 이번 타임오프 논의를 놓고 '최저임금위원회 시즌2'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구성이 노동계, 경영계, 공익위원 각 5명으로 최저임금위(노·사·공익 각 9명) 위원 구성과 유사한 데다 노·사, 공익위원 간사는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간사단(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 류기정 경총 전무,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심의의결 시한을 넘기더라도 특별히 법이 정한 패널티가 없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는 법정 시한을 넘기긴 하지만 매년 7월 중순에는 결론이 나는 것이 그 영향이 전국민에 미치는데다 최저임금 의결 없이는 차기연도 예산안도 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타임오프 논의는 심의의결 시한을 넘겨 설사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더라도 그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협상의 키를 쥔 공익위원들이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노동계 혹은 경영계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더군다나 차기 대통령 선거가 한달도 채 안남은 것도 공익위원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