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과자산업에도 기회…맛을 놀이로 즐기는 문화 만들 것"
“공장에서 고민 없이 찍어 만든 과자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이제 당뇨병 환자용 등 맞춤형 과자를 고민해야 합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76·사진)은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자산업에도 예술, 메타버스 등 새로운 콘텐츠를 입혀 제품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악, 조각 등 예술에 조예가 남다른 윤 회장은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에게도 평소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임직원들이 판소리를 배워 직접 무대에 서고 조각 전시회에도 출품하게 된 데는 윤 회장의 남다른 예술 열정이 크게 작용했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 구축할 것”

출산율 저하로 국내 과자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윤 회장은 아트경영을 위기를 벗어날 타개책으로 봤다. 처음 도입했을 땐 내부 반발도 많았다. “회사에서 시를 쓰고, 조각을 하면 일은 언제 하느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예스 포장에 심명보 작가의 ‘백만송이 장미’를 넣고, 밋밋하던 쿠쿠다스에 초콜릿으로 물결 무늬를 넣자 매출이 뛰었다. 직원들이 만드는 광고 문안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메타버스 시대의 도래는 제과산업 전반에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가상현실에서도 눈과 귀로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은 가능하지만 맛은 느낄 수 없다”며 “맛을 놀이로서 즐기고, 체험하는 데 과자만 한 제품이 없다”고 강조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2016년 과자로 집을 만드는 체험 키트 ‘키즈뮤지엄’을 개발해 과자에 놀이문화를 접목했다. 출시한 지 5년이 지난 키즈뮤지엄은 최근 코로나 시대 집콕 놀이로 유튜브 등에서 화제가 되면서 ‘품절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윤 회장은 위기를 벗어날 또 다른 전략으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를 꼽았다. 그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유연한 제조라인을 구축하면 개인 맞춤형 과자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며 “예컨대 똑같은 오예스도 당뇨가 있는 소비자들을 위해 성분을 조절해 제공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올해 코로나19 위기를 뚫고 전년(9232억원) 대비 2.9% 증가한 9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가 앞선 기업이 살아남는 시대”

윤 회장이 예술을 경영에 접목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건 20여 년 전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기계가 좋아 과자포장 공장부터 자동차부품 공장까지 직접 운영해 본 그의 눈에 제과산업의 기술력은 이미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윤 회장은 “경쟁사와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제품에 예술을 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아트경영으로 달라진 건 제품만이 아니다. 회사의 문화도 달라졌다. 외환위기로 1998년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맞은 뒤 열패감에 빠졌던 직원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예술로 전 직원이 뭉쳐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크라운제과가 4년 만에 화의에서 벗어나 2005년 몸집이 두 배나 큰 해태제과를 인수할 수 있었던 저력도 모두 아트경영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윤 회장은 “규모가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인수하는 게 아니라 문화가 앞선 기업이 뒤처진 기업을 인수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1969년 크라운제과에 입사한 뒤 50년 넘게 제과산업에 몸담고 있는 윤 회장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경영 철학은 ‘식이생식즉생(食而生食卽生)’. “먹는 것이 곧 생명”이라는 말이다. 그는 “작은 군것질거리라도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절대로 대충 만들어선 안 된다”며 “앞으로도 소비자에게 정직한 회사로 남겠다”고 말했다.

박종관/전설리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