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 한국 '규제 덫'에 질렸나…디지털 경쟁력 낙오 탓인가
한미은행과 화학적 결합 '미완성'
강성노조 반발에 호봉-연봉 공존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적응 못해
몸집 키우는 대형銀·핀테크에 밀려
경쟁력 저하→수익 하락→철수
씨티의 한국 사업 축소가 ‘K규제 때문이 아니다’란 당국의 설명은 은행권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국내 은행들은 “대형은행과 경쟁에서 밀린 이유가 크다”고 보면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국내 노동 및 금융규제와 특유의 연공서열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씨티은행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 비대면화로 바뀌는 금융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국내 은행들도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규모의 경제’에서 밀려
기업금융을 주로 하던 씨티은행 서울사무소는 외환위기에서 살아남은 한미은행을 2004년 인수했다.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에선 ‘메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사업 초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국내에 소개하고, 직장인 신용대출 등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국내 은행도 한국씨티은행의 새로운 시도에 뒤따랐다.그러나 씨티은행은 대형화하는 국내 은행들에 서서히 밀렸다. 한미은행을 인수한 2004년은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은행 간 구조조정이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한미은행의 덩치가 애초에 작은 편이어서 경쟁이 쉽지 않은 구도가 펼쳐졌다”고 말했다.
‘강성 노조’가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국씨티은행 노동조합은 옛 한미은행 시절부터 금융노조 내부에서 ‘강경파’에 속했고, 씨티은행 편입 후 수차례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더욱 강경해졌다. 2000년대 대부분 국내 은행이 노사 합의로 없앤 ‘퇴직금 누진제’가 유일하게 남아 있을 정도다. 희망퇴직 시에도 시중은행에 비해 최대 두 배, 10억원이 넘는 돈을 받은 씨티은행 직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직된 고용문화는 미국 본사 눈높이엔 한참 벗어나 있었다. 국내에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이후 은행권에 일반화된 ‘PC 셧오프제’도 본사에선 이해하기 힘든 제도로 꼽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씨티그룹 직원들이 “한국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해불가 호봉제’…은행들 ‘남 일 아냐’
노동문화와 호봉제에 대한 씨티그룹 내부의 비판도 많았다.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의 HR(인사관리) 임원은 글로벌 본사와 소통할 때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외국인 임원들에게 ‘호봉(hobong)’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은행 출신과 씨티은행 서울 본점 출신 간 ‘화학적 결합’이 인수 17년이 된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기존 한미은행 직원들은 호봉제, 옛 씨티은행 직원들은 연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사회공헌 액수까지 지적하는 사회 분위기와 금융당국의 배당 간섭, 오락가락 대출 규제 등 ‘관치 금융’이 심화되면서 씨티그룹 본사도 한국에서 사업 의욕이 떨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씨티은행의 한 임원은 “미국 본사의 자금세탁 방지 및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에 허가 위주의 국내 규제가 2중, 3중으로 더해지니 신사업을 추진하기 힘든 구조였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선 이런 문제는 한국씨티은행만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호봉제와 경직적 노동문화, 촘촘한 규제망 등은 다른 은행에도 똑같이 해당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전통 은행업이 비대면과 디지털 금융으로 바뀌는 가운데 씨티은행 사업 축소가 오히려 ‘신의 한 수’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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