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13년 이후 최대인 7.5%의 임금 인상안에 26일 서명했다.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시작된 도미노 연봉 인상의 여파다.

연봉 1위 삼성전자마저…직원 달래려 '역대급 인상'
삼성전자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2700만원(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1위다. 삼성전자는 그간 경쟁업체보다 1.5배 가까이 높은 연봉 수준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핵심 인재의 이탈을 막아왔다. 사원협의회와 벌였던 그동안의 임금협상에서 이렇다 할 잡음이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게임과 IT 플랫폼 기업 간 인재쟁탈전이 벌어진 게 시작이었다. IT 기업들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박탈감을 느낀 제조 대기업 직원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SK하이닉스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 역시 직원들의 불만이 확산된 배경 요인으로 꼽힌다.

노사 자율조직인 삼성전자 사원협의회의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올해 새로운 임금이 적용되는 지난 21일에도 임금인상률을 결정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통상 3월 초 임금협상을 타결하고 3월 월급날부터 인상분을 지급해왔다. 사원협의회는 기본 인상률 6%를 요구한 반면 사측은 3%를 제시한 탓에 협상이 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중간 지점인 4.5%에서 기본 인상률을 정하는 타협이 이뤄졌다. 하지만 직급과 인사고과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성과 인상률 3%까지 더한 실질 인상률은 7.5%에 이른다. 임금 수준에 불만이 많았던 사원~대리급 직원에겐 두 자릿수 인상률을 적용했다. 고졸 신입사원~대졸 대리에 해당하는 CL1~2 등급 직원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11%에 달한다. 이번 협상을 두고 ‘사원협의회의 완승’이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를 통해 임금과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며 “이들의 의견이 임직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종업계 대기업인 LG전자가 올해 임금 인상률을 9%로 결정한 것도 삼성전자가 파격 인상안을 제시하게 된 배경으로 분석된다. LG전자는 18일 노동조합에 평균 9%의 임금 인상과 직급별 초임 최대 600만원 인상을 약속했다. 지난해 인상률은 3.8%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임금협상을 지켜본 다른 기업들의 속내는 편치 않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다른 업종의 대기업 및 중견·중소기업으로선 인상은커녕 기존 임금 수준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우수 인력들의 이탈과 동요가 불 보듯 뻔하다”고 토로했다.

임금 양극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IT업계에 불어닥친 임금 인상과 성과보상 요구 바람이 제조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생산성이나 성과와 무관하게 연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임금 양극화에 따른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