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BMW 차량 화재 사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BMW 차량에 불이 나는 사고는 올 들어서만 32건 발생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BMW 차량 화재 사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BMW 차량에 불이 나는 사고는 올 들어서만 32건 발생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이 ‘주행 중 화재’ 사태에 대해 6일 대국민사과를 했다. 올 들어서만 32대의 BMW 차량에 불이 나자 이뤄진 공개사과다. 이례적으로 BMW그룹의 본사 임원들까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불안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에만 국한된 사고가 아니다”라는 해명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등 BMW가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EGR 결함 주장 고수한 BMW

김 회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화재로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불안과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전 안전진단 및 자발적 리콜(결함 시정)이 원활하고 빠르게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동시에 화재 원인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화재 원인으로 추정된 BMW 디젤차량의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
화재 원인으로 추정된 BMW 디젤차량의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
김 회장의 사과 이후에는 본사 임원의 사고 원인 설명이 이어졌다. 요한 에벤비클러 품질관리부문 수석부사장은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내 냉각기에 문제가 생겨 화재가 발생한 것”이라며 “결함 때문에 냉각수가 새면서 침전물이 형성됐고, 이 침전물 때문에 냉각기 성능이 떨어져 배기가스 온도가 낮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전문가들이 제기한 소프트웨어(SW) 결함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에벤비클러 부사장은 “통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과 한국 외 국가의 EGR 결함 비율이 비슷하다”며 “이런 현상(EGR 결함에 따른 화재)은 한국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국 내 EGR 결함률은 0.10%고 한국 외 국가에서는 0.12%로 크게 차이가 없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하지만 결함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는 ‘레벨3 결함’ 빈도를 비교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한국에서 최근 잇따라 차량에 불이 붙는 사고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현재 조사 중”이라고만 설명했다.

◆화재 가능성 무마 의혹

BMW "EGR 결함 조속히 리콜"… '소프트웨어 조작' 논란은 부인
BMW 관계자들은 2016년부터 화재 가능성을 인지했지만 이를 무마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에벤비클러 부사장은 “2016년 흡기관에 구멍이 생긴다는 보고를 받았고,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원인을 파악했다”며 “지난 6월 EGR 모듈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을 파악한 이후 우선 유럽 시장에 필요한 조치를 했고, 그다음 한국에 리콜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에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는 이유로 지난 2년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 이후 움직임이 늦은 것도 문제”라며 “6월부터 빠르게 리콜 결정을 내렸으면 화재 건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날 EGR 모듈 결함 외 다른 이유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는지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김경욱 국토교통부 교통물류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BMW 측은 EGR 결함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근거 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다”며 “그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보완해 제출하라고 BMW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BMW가 추가 자료를 제출하면 외부 전문가에게 그 내용을 공개하고 함께 원인을 규명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BMW가 현재까지 시행한 안전진단 결과 8.5% 정도가 문제 차량으로 분류됐다고 한다”고 밝혔다. 리콜 대상 10만6317대 중 약 8000대가 화재 위험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운행금지 등 추가 조치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실장은 “운행을 금지하는 건 현행법상 근거가 없어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BMW 차량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건 2015년부터인데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았고, 올 4월 환경부가 EGR 결함으로 BMW 차량에 리콜을 시행했을 때도 국토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권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순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행 제조물책임법에서는 제조업자에 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고 있는데, 더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도병욱/세종=서기열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