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고용부 '폭주'에 경제부처들 '부글부글'
지난달 8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 수소자동차 등 친환경차 보급 확대방안을 논의하던 중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갑자기 경유차 얘기를 꺼냈다.

김 장관은 “네덜란드 등에선 친환경차를 늘리려고 경유차를 강하게 규제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다른 참석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친환경차 확대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난데없이 경유차 규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한 참석자는 “규제 해소, 혁신 성장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환경이나 노동, 복지 분야 장관들이 자기주장을 고집하거나 안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회의를 ‘실세’ 부처로 떠오른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이른바 사회부처들의 위상을 보여준 단면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부처는 정부의 핵심정책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의 뼈대가 되는 주요 정책을 맡으면서 부처별로 대립하던 각종 현안에서 기획재정부 산업부 국토교통부 등 경제부처들을 밀어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환경·고용부 '폭주'에 경제부처들 '부글부글'
사회부처의 독불장군식 행보

사회부처의 독불장군식 행보가 계속되자 다른 부처는 물론 여당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정책 불협화음이 이어지면서 이번 개각에서 사회부처 장관 일부가 교체 대상에 포함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환경부와 산업부, 국토부 등은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발표된 로드맵엔 환경부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반영됐다. 2030년까지로 예정된 온실가스 감축량 중 국내 산업계 부담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수송·건물 부문 등의 감축량 목표도 상향 조정됐다. 정부 관계자는 “온실가스 협의 과정에서 산업부와 국토부가 완강하게 버텼지만 환경부에 완패했다”고 전했다.

나라 살림을 맡고 있는 기재부는 사회부처들의 막대한 예산 요구에 고민이 늘었다. 환경부는 노후 경유 소형트럭(1t)의 액화석유가스(LPG)차 전환 사업 등에 대규모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1t 트럭은 약 230만 대로 이 중 99%가 경유차로 추산된다. 환경부의 요구대로라면 대당 최대 500만원의 보조금을 줘야 한다. 기재부는 LPG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화석연료인 만큼 보조금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하지만 환경부는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소형 트럭에 보조금을 주면 환경 보호도 되고 서민 지원도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비급여를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 중인 복지부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기재부에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예산 증액 없인 건강보험료를 더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기재부가 물러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여당 대표 말도 안 듣는 고용부

고용부의 행보는 더욱 거침없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주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근로시간 단축의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보완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고용부는 산업부와도 사사건건 부딪쳤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를 놓고 ‘무조건 공개’를 고집했다. 산업부가 “국가 핵심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지만 아예 행정지침을 개정해 제3자 열람이 가능하도록 했다. 작업보고서 공개 논란은 법원 판단을 통해 가려지게 됐다.

몸집 불리기 본격화하나

환경부와 고용부는 조직 확대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물통합 관리권’을 확보한 환경부는 국토부에서 188명의 인력과 6000억원의 예산을 넘겨받았다. 환경부 인력(소속기관 포함)은 작년 말 1904명에서 현재 2295명으로 391명 증가했다. 고용부 역시 행정안전부와 인력·조직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기재부는 불필요한 곳에 혈세가 쓰이는 것을 막겠다며 지난해 9월 김용진 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지출구조 개혁단’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입김이 세진 환경·고용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재길/이태훈/성수영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