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신 회장은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신 회장은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참담합니다.”

초유의 총수 구속 사태를 맞은 13일 롯데가 내놓은 공식 입장문 첫줄이다. 신동빈 회장의 법정구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 충격은 더 컸다. 롯데 안팎에선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한 만큼 집행유예를 ‘최악의 시나리오’로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도 이런 기대를 키웠다.

대한스키협회장과 국제스키연맹(FIS) 부회장 자격으로 평창에서 올림픽 스키선수단 지원과 민간스포츠 외교 활동을 벌여온 신 회장에게 법원이 정상을 참작해 양형을 결정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예상과 달랐다. 재계도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총수 공백에 제동 걸린 '뉴롯데'… 지배구조 개편·해외사업 어쩌나
◆롯데 비상경영체제로

신 회장의 구속으로 롯데는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중심의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이날 저녁 황 부회장과 롯데지주 임원들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회의를 했다. 롯데 고위관계자는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의 말이 중간에 뚝뚝 끊길 정도로 충격이 심한 상황”이라며 “황 부회장 중심으로 현안을 빈틈없이 챙기자는 정도의 얘기만 오갔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구속으로 롯데는 간신히 안정을 찾은 경영권이 다시 흔들릴지 모른다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 신 회장과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마무리됐다. 부친인 신격호 총괄회장도 계열사 등기이사진에서 모두 물러났다. 신 회장이 지배하는 롯데지주도 작년 10월 출범했다.

하지만 신 회장의 경영권은 견고하지 않다. 호텔롯데를 통해 한국의 롯데 계열사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지분율 28.1%)인 광윤사를 신 전 부회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롯데 경영권을 위해 일본 롯데홀딩스를 장악해야 하는 이유다.

신 회장은 광윤사를 제외한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 2, 3대 주주다. 이들이 지지를 철회하면 일본 롯데홀딩스 내에서 입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롯데 관계자는 “일본 관례상 일본 롯데홀딩스가 주주총회에서 구속된 신 회장의 대표직 사퇴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지배구조 개편 작업의 차질도 예상된다. 일본롯데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 주주 지분을 기존 99%에서 약 50% 낮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잠실면세점 면허 박탈 위기

롯데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내 면세점 사업 면허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관세청은 신 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롯데면세점의 잠실점 특허를 박탈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신속하게 판결내용을 분석해 위법 내용과 정도를 확인할 방침”이라며 “1심 판결문의 사실관계만으로도 관세법상 특허취소 사유가 명확할 경우 잠실점 면허를 취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사업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중국 롯데마트 매각작업 역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 사업 확대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재계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

재계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이달 초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그룹 전·현직 경영진에 선고된 항소심 재판 결과와 배치되는 논리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많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인 와중에 대한스키협회장을 맡고 있는 신 회장이 구속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나왔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재판부가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해 기업체에 출연을 강요했다고 판단하면서도 신 회장을 뇌물공여죄로 처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제3자 뇌물죄 혐의를 적용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 회장 사이에 롯데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오간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롯데는 사드 보복 등 국내외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근 5년간 국내 일자리를 30% 이상 늘린 일자리 모범기업”이라며 “이번 판결이 롯데의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재광/이수빈/이상열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