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서부의 충칭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30분쯤 달리면 나타나는 춘탄항.한쪽에서는 수도 없는 크레인들이 컨테이너를 들어올리고,다른 한쪽에서는 트럭이 왔다갔다 하며 항구를 넓히고 있었다. 이곳은 싼샤댐을 지나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6000㎞의 창장 대운하가 시작되는 곳.쓰촨성 청두와 충칭,그리고 산시성 시안을 잇는 서삼각경제구의 물류 심장이다.

남한 면적의 5분의 4에 달하는 충칭은 지금 거대한 공사판이다. 충칭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은 온통 새로 짓는 건물과 도로건설 현장뿐이었다. 충칭과 청두,그리고 산시성 시안을 잇는 서삼각경제구가 혁명 후 최대 역사라는 서부 대개발의 핵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한 덕분이다. 청두와 충칭을 잇는 고속열차가 개통돼 차로 4시간 걸리던 것이 2시간으로 줄어든 데 이어 57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시속 350㎞ 초고속 열차가 다시 만들어진다. 세 지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한꺼번에 두 개가 건설 중이다. "수요를 맞추느라 24시간 풀가동한 충칭의 한 시멘트 공장이 결국 설비가 폭발해 생산이 중단됐다"(충칭 웨스트엘리베이터 권오철 총경리)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서부 대개발 프로젝트 시작 10년을 맞은 충칭은 이렇게 용틀임하고 있었다.

충칭뿐 아니다. 쓰촨성의 상반기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은 무려 69.9%다. 산시성은 41.6%에 달한다. 서부지역의 성장률은 네이멍구 16% 등 모두 10% 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원래 수출이 아닌 내수기지였던 서부지역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의 내수부양책에 힘입어 경기는 가속도를 탔다.

지난 8월 말 현재 충칭의 소비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2.2%.중국 평균(15.1%)을 훨씬 웃돈다. 충칭 시내 자리공원 지하에 있는 대형 쇼핑몰은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붐볐다. 슈퍼마켓에는 신선한 먹을거리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최근 국경절 연휴 때 충칭의 소비증가율은 32%로 구이저우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고 충칭시 관계자는 말했다. 소비가 증가하면서 기업 생산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9.9% 늘어나는 등 연초 10% 안팎에서 수직 상승하고 있다. 충칭 웨스트엘리베이터의 권 총경리는 "대부분 기업들이 농촌과 내수 활성화 정책으로 매출이 늘고 있다"며 "엘리베이터의 특성상 해외 수출이 많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내수 비중이 60%로 높아졌다"고 전했다.

해외 기업 유치도 본격화하고 있다. 2007년 청두에 미국 인텔이 공장을 지은 데 이어 지난 8월부터는 휴렛팩커드(HP)가 충칭에 생산라인을 깔았다. 연간 2000만대의 노트북 PC를 생산해 전부 수출할 예정이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충칭시는 휴렛팩커드에 수출단지를 조성해주고 공항 활주로와 터미널을 증설 중이다. 독일 바스프,프랑스 수에즈환경그룹도 잇따라 충칭에 발을 들여놓으며 광활한 중국 서부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창장 대운하에 지금은 5분에 한 대씩 대형 선박이 지나간다"(충칭 한인회 황중영 부회장)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업활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의 서부지역 투자는 아직 미미하다. 충칭만 해도 한국 기업은 30개 정도이며 교민은 1000명이 채 안 된다. 물류비가 많이 든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사실 창장 대운하를 이용해도 상하이까지 6일이 걸리니 상하이 근처에 공장을 차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비즈니스 환경이 개선되고 있고 전기나 가스비는 동부 연안의 절반 수준이다. 인건비 역시 저렴하다. 게다가 내수 시장은 날로 확장 중이다.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는 지난 13일 한 · 중 우호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신정승 주중 한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 회사들이 이제 충칭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한국 기업들이 이에 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한국 기업들이 충칭에 투자한다면 한국 공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서부 대개발에 이미 1조7400억위안(약 297조원)을 쏟아부었지만 4689억위안(약 84조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충칭~구이양 철도 등 18개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더해진다. 주장삼각주와 창장삼각주,그리고 환보하이권과 더불어 서부삼각경제구는 중국 경제 제4의 성장축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충칭=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