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진짜 사장' vs '진짜 노동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노동 리스크에 대한 기업의 대응
자동화 투자하면서 고용은 축소
87년엔 FA, 文정부선 키오스크
노란봉투법으로 로봇 공정 가속화
"진짜 사장 나오라"는 노조 압박에
'진짜 노동자' 로봇으로 맞설 것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자동화 투자하면서 고용은 축소
87년엔 FA, 文정부선 키오스크
노란봉투법으로 로봇 공정 가속화
"진짜 사장 나오라"는 노조 압박에
'진짜 노동자' 로봇으로 맞설 것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당시 제조업 실질 임금이 급증한 것은 우리 경제에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지만, 기업엔 전례 없는 압박이었다. 임금이 노동생산성을 그처럼 빠르게 앞지르는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 무렵 기업의 대응을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이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에서 발표됐다. 오지윤 명지대 교수와 라이언 마이클스 미국 필라델피아연방은행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노동자 대투쟁 전후인 1982~1995년 10인 이상 한국 제조 공장을 보면 임금이 10% 상승할 때 자동화 도입 비율도 최대 2.8% 높아졌다고 한다. 기계 설비에 투자한 공장 중 39%는 동시에 고용도 줄였고, 특히 임금 급상승기인 1987~1992년에는 그 비율이 43.8%나 됐다. 임금 상승이 자동화 도입을 직접적으로 촉발하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노동자 대투쟁에 버금갈 정도로 임금이 급등한 때가 문재인 정부 시절이다. 집권 초기 2년간 최저임금이 약 30% 인상됐고, 5년간(2017~2022년) 총 41.5% 올라 시간당 6470원에서 9160원이 됐다. 근로자·서민층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미명 아래 무리하게 최저임금을 끌어 올렸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인건비 부담에 자영업자들이 질식할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자 대투쟁기에 기업이 공장 자동화에서 살길을 찾았듯, 최저임금 급등기에 자영업자들이 기댄 것은 아르바이트를 대체할 키오스크였다. 2021년 21만 대였던 국내 키오스크는 2023년 53만 대로 2년 새 155% 이상 급증했다. 키오스크에 알바 자리마저 뺏기면서 ‘그냥 쉬고’ 있는 청년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 중이다.
노란봉투법은 차원이 다른 노동 리스크다. 단순히 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 부담만이 아니라 여태껏 알았던 노사관계의 근본 틀을 뒤흔들고 있다. 원청 기업은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하청 근로자와도 교섭해야 할 판이다.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산업의 원·하청 고리에는 수백, 수천 개의 협력 업체가 들어 있다. 임금, 근로 시간, 복지 등 근로 조건만이 아니라 인수합병(M&A) 투자, 사업장 이전 등 경영 의사 결정까지 쟁의 대상이 된다. 반면 노조 파업에 대한 사용자 측의 대응 수단 중 하나였던 손해배상 제도는 엄격히 제한된다. 노동자가 더 날카로워진 파업의 칼날로 구석구석 찌르도록 해놓고 사용자는 사실상 무장 해제시킨 게 노란봉투법이다.
노동 리스크에 기업의 대응은 일관돼 왔다. 고용을 줄이고 자동화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시대에는 공장자동화(FA)와 키오스크 수준을 훨씬 넘어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있다.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 그날부터 증시의 가장 강력한 테마주는 로봇주다. 시장은 그만큼 정확히 흐름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산하의 세계적 로봇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오는 10월부터 미국 메타플랜트 공장에 투입한다. 로봇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도 않고 근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밤에도, 휴일에도 근무한다.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싱귤래러티의 순간이 오면 모를까, 파업도 당연히 없다. 한국 노조의 파괴성을 보면 아틀라스가 국내 공장에 투입되면 러다이트 폭동이 재연될지도 모른다.
제조업에 로봇이 있다면, 물류에는 자율주행 무인 트럭과 마일트레인(초장대편성 화물 열차)이 있다. 수소 무인 트럭은 탄소중립에도 이상적이다. 문자 그대로 편성 길이가 수마일에 이르는 마일트레인은 수송 능력이 화물차의 수십 배에 달한다. 노란봉투법이 공식 시행되지도 않았는데, 민주노총의 구호는 벌써 “진짜 사장 나와라”다. 지금은 잔뜩 겁먹고 있는 기업들이 언제가 이렇게 맞설 수 있다. “우리에겐 진짜 노동자, 로봇이 있다”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