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일 그만둘까"…'연봉 1억' 신혼부부 절망한 이유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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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희망타운, 연 소득 1억 부부 '택도 없다'
"미혼이 유리"…5쌍 중 1쌍 혼인신고 미뤄
"실효성 있는 보증대출·정책금융 확대해야"
"미혼이 유리"…5쌍 중 1쌍 혼인신고 미뤄
"실효성 있는 보증대출·정책금융 확대해야"
내년 1월 결혼을 앞둔 강모 씨(32)는 이달 12일까지 신청받은 서울 대방 신혼희망타운 잔여 세대 청약을 알아보다 결국 단념했다.
부부 합산 연 소득은 약 1억원으로, 맞벌이 기준 소득 200%(연 1억3200만원) 이하 요건을 충족해 청약 자격은 있었지만, 문제는 이후였다. 7억7000만 원에 달하는 분양가를 감당할 자금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자녀가 없는 이들은 청약 순위에서도 밀린다. 신혼희망타운은 유자녀 가구에 가점이 부여되고, 다자녀일수록 우선 공급 비율이 커지기 때문이다.
강 씨는 "그냥 신혼부부한테 절망을 주는 정책인 것 같다"며 "소득은 애매하게 많고, 아이도 없으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데, 차라리 내가 일을 그만둬야 가점이 오를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신혼부부 전용 디딤돌·보금자리론 또한 주택 가격 6억원 이하, 부부 합산 소득 7000만~8500만원 이하일 때만 가능해, 강 씨 부부는 해당하지 않았다.
대방 신혼희망타운과 같은 고분양가 단지는 이들 대출을 이용할 수 없어, 선택지는 전용 모기지(수익공유형)나 일반 주택담보대출뿐이다.
전용 모기지는 고정금리 최대 1.6% 수준으로 분양가의 70%까지, 최대 5억3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나머지 2억~3억원은 계약금·중도금·잔금 등으로 본인이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금액을 준비할 수 있는 신혼부부는 드물다. 또한 시세차익의 최대 50%를 정부와 나눠야 하며, 8년간 전매가 제한되고 최소 5년간 거주 의무가 있다.
일반 주담대를 병행할 수도 있지만, 금리가 4~6%대로 높고,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40~50%로 제한돼 대출 한도 자체가 낮다. 결과적으로 실수요자인 신혼부부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강 씨는 신혼희망타운을 포기하고 혼인신고를 미뤄 저렴한 주택을 매매하는 쪽을 택했다.
◇맞벌이 부부도 좌절…7.7억 분양가, 현실은 '금수저 전형'
2023년 기준 대한민국의 평균 초혼 연령 또한 점점 30대 중반(남성 33.9세, 여성 31.6세)으로 늦춰지는 추세다. 이 연령대의 평균 연 소득은 남성 약 5670만원, 여성 약 3700만원이다.
그러나 이 같은 소득으로는 '청약 자격은 있으나 대출이 불가능하고', '대출은 가능하지만, 청약이 불리한' 구조에 부딪히기 쉬워, 많은 신혼부부가 '낀 계층'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잃고 있다.
결국 부모 지원 없이는 입주가 어렵다는 현실에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컨대 연 소득 1억원인 맞벌이 부부가 매년 소득의 50%를 저축한다고 해도, 평균 분양가 7억7000만 원을 모으는 데 약 15년이 걸린다.
내년 3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박모 씨(32) 역시 "수도권 신축 아파트는 금수저가 '똘똘한 한 채'를 노리고 들어가는 곳이라는 생각만 든다. 일반 시민은 발도 못 들인다"고 말했다.
그는 "신희타는 진작에 포기했고, 한 명은 디딤돌 대출, 다른 한 명은 일반 주담대를 받자는 조언도 들었지만, 혼인신고를 해버리면 부부합산 소득으로 대출 받을 때 불리해진다"며 "추경에 하반기 금리 인하 얘기도 나오고, 대출 규제 완화 흐름도 있어서 일단 결혼식 후 혼인신고는 미루고 시세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청년 디딤돌 대출은 단독 소득 6000만원 이하까지 허용돼, 같은 조건이라도 1인 청년 가구에 훨씬 유리하지만, 신혼부부는 소득 합산 기준이 적용돼 맞벌이일 경우 기준 초과로 탈락하기 쉽다.
결국 '청년은 되고, 신혼부부는 안 되는' 제도적 역설이 현실화하면서 혼인신고 기피로도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부부 5쌍 중 1쌍(약 20%)이 결혼 후 1년 이상 혼인신고를 미뤘고, 2년 이상 지연은 8.78%, 3~4년은 1.57%로 2014년(0.84%)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5년 이상 지연된 경우도 2.43%에 달하며, 장기 미신고 추세는 확대되는 중이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25~39세 기혼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 결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응답자 중 56.8%는 "미혼일 때 신혼집 마련이 더 유리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전문가들, 정부의 '주거 사다리' 마련 촉구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결국 문제는 초기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데 있다. 신혼부부가 각자 결혼 후 집을 장만하기 위해 초기 비용을 마련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결국 처음 집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마저도 한계가 있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 더욱 실효성 있는 정책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예를 들어 신혼희망타운을 고려하는 맞벌이 직장인들에게 직장 기반의 보증 대출이나 신용보증 제도를 통해 1인당 5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의 대출을 가능하게 한다면, 초기 자본 조달이 가능할 것"이라며 "신혼부부에게 정책적 배려와 금융기관의 실질적인 자금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정책금융 대출은 금액이 많을수록, 대상이 명확할수록, 이율이 낮을수록 좋다"면서도 "정책자금을 운용하려면 자금과 제도에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형평성 측면에서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섬세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모든 것을 떠맡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가격이 워낙 오른 현실을 감안하면, 영구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실질적인 주거 사다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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