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사진은 직접적 연관없음.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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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후 전세 계약이 끝나면 타지로 이동해 다른 사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떠나려야 떠날 수가 없네요."

충남 당진 소재 A다세대주택에서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20대 이모 씨는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 같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평소 살갑게 인사하며 지내던 집주인 내외가 인근 항구에서 최근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주인 내외가 맨 위층에 거주해서 세입자들과 자주 마주치고 지냈다"며 "지난달 초 부고 소식을 듣고 정말 황당했다"고 전했다.

지난 3월29일 해당 집주인 내외가 세상을 떠난 후 이들 소유 건물에 전·월세로 거주 중인 세입자들은 이처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친자식을 포함한 상속인 6명 모두가 상속을 포기해서다. 부부가 당진 지역에 소유하고 있는 건물은 총 5채다. 4채의 다세대주택에는 각각 10~12가구가 거주하고, 나머지 한 채의 오피스텔은 42호실 규모다. 따라서 약 80여세대가 현 소유주가 된 은행의 경매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경매가 진행되더라도 집주인 부부의 대출금이 워낙 많아 보증금이 제대로 반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 한 공인 중개사는 "집주인 부부는 여기에서 일종의 유지처럼 보였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채까지 끌어 썼단 소문이 돌 정도로 자금 사정이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현재 묶여 있는 전세 보증금 6000만원은 대부분이 은행 대출"이라며 "연말에 대전에서 친구와 동업으로 식당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자금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경매까지 최소 6개월은 걸린다고 한다"며 "그 이후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지도 확신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부부가 소유했던 B빌라에 거주 중인 20대 최 모씨는 "월세 세입자는 일단 월세를 내고 있지 않으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타격이 상대적으로 작다"며 "상황이 급한 건 전세 세입자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매일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A빌라 세입자 단톡.  /사진=독자 제공
A빌라 세입자 단톡. /사진=독자 제공
여기에 건물 관리까지 세입자 몫으로 남았다. 각 건물 세입자들은 자체적으로 '반장'을 뽑아 각종 공과금을 걷고, 건물 청소 대금 등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심지어 보통 집주인이 맡는 승강기 안전관리자도 세입자 중 한 명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이씨 역시 A다세대주택의 반장 역할을 맡았다. 그는 "이 건물뿐만 아니라 인근에 위치에 나머지 네 개 건물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건물이 관리되고 있다"며 "전기, 수도, 인터넷, 승강기 관리 등 챙겨야 하는 공과금도 여러 종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같은 처지에 놓인 세입자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비교적 협조도 잘 되는 분위기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상미 전세사기전국대책위원장은 "신축 건물에 대한 감정 평가 부풀리기와 이를 통한 과도한 대출 허가 등 임대 업계 전반에 걸친 구조적인 문제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라며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 더 이상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