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괴롭힘금지법, 한국사회 블랙스완이 되다
'괴로운 나라' 한국, 조용히 전염되는 괴롭힘
우리 사회에 누적된 고통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화 ‘아저씨’와 같은 K컬처로 승화돼 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문제는 현실이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내·외 조사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 세대와 젠더 갈등을 정점으로 사회 전반의 갈등 수준이 OECD 평균의 두배가 넘는 나라,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후 매년 최저 출산율을 갱신하는 나라, UN 행복지수가 OECD는커녕 전쟁을 겪는 국가보다 낮은 순위로 랭크되는 나라, 2024년 현재 한국을 설명하는 지표들이다.

젠더, 세대, 빈부, 차별로 초래되는 사회적 괴로움은 당연히 주요 터전인 직장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괴로운 오너와 상급자가 힘없는 부하에게 갑질을 하면,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하급자는 신체·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심신이 취약해진 구성원이 동료에게 일을 전가하게 되면 바로 괴롭힘 행위자로 전환될 수 있다. 괴롭힘을 ‘조용한 전염병’으로 부르는 이유다.

K괴롭힘금지법, 反양진호법으로 제정
우리나라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3법은 언론을 통해 양진호 회장의 무차별 폭력 영상이 공개되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고 2018년 12월 27일, 이른바 ‘반(反) 양진호법’으로 입법됐다. 이 법률은 2019년 1월 15일 공포되었고, 그해 7월 16일부터 개정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2020년 1월 15일부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 법은 근로기준법 제6장의2를 신설하고 76조의2에서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다른 근로자에게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법적 개념과 금지를 원칙으로 천명하고, 76조의3에서 괴롭힘 발생 시 누구든지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신고나 인지시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의무, 행위자 조치 및 피해자 보호의무를 부여하고,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처우에 대하여는 형사처벌까지 규정하고 있다.

최초 입법이 이루어진 북유럽 국가에서는 근로자의 정신적 건강에 대한 학계와 정책적 노력이 법제화의 밑거름이 되어 2000년 이후 법제화되었고, 호주나 캐나다 등에서도 법제화의 핵심 목표는 괴로움의 해소와 치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법은 행위금지, 행위자 징벌을 포함하여 사용자의 의무를 행정벌과 형사처벌로 강제하고 있어 괴로움 해소나 예방보다 사후처리와 제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괴롭힘법, 갈등해결법으로 나아가야
시행 5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업종, 지역, 규모를 불문하고 갈등 증폭을 이끌어 '블랙스완'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사업장 내 끊이지 않는 이슈일 뿐 아니라 사업장 담장을 넘어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로 접수되는 사건도 폭증하고 있다. 실제로 근로자가 고용부에 제기하는 사건은 2019년 7-12월까지 노동부에 2130건이었으나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 2022년 8976건, 2023년 1만28건으로 급증했다. 노동위원회의 전체 사건 중 40% 이상이 괴롭힘 사건이고 그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 신고사건 중 검찰기소, 과태료 처분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소수이며 시정지시까지 포함하더라도 10%에 미달하지만 사건 처리 난항을 겪고 있다.

괴로운 한국 사회의 하부구조인 직장에서 갈등과 분쟁이 빈번히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갈등해결 매커니즘을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괴롭힘 분쟁은 파괴적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사업장의 혼란을 종결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으로 모호한 괴롭힘의 판단기준의 명확화, 산재해 있는 구제절차와 판단기능의 통합과 조율, 중립적 판단기관의 설치, 사용자의 사건조사 및 조치 의무 이행 상 어려움 해소와 같은 문제들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괴롭힘 금지법이 평화로운 일터를 구축하는 갈등해결의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다음 5년, 50년을 열어갈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괴롭힘 금지법 시행 5주년을 맞아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분야에 몸 담으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현황과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방향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문강분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