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K스타트업의 '일본 러시' 이대로 괜찮을까
요즘 한국 스타트업은 ‘일본 러시’ 중이다. 알 만한 기업의 상당수가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나가 있다. 일본은 그동안 디지털 전환(DX)이 더뎠기에 한국 스타트업으로서는 기회의 땅이다. 커지는 일본 DX 시장을 선점하려는 정보기술(IT) 플랫폼 회사가 많다.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라인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한국 스타트업들은 혹시 불똥이라도 튈까 사태를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해 말 일본팀을 꾸린 한 플랫폼 스타트업 임원은 “사태가 장기화하고 한국 기업에 대한 정서가 부정적으로 바뀔까 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본에 나간 한국 스타트업은 일본 시장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폐쇄적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한 플랫폼 관계자는 “나름대로 대비하고 왔는데도 불신의 벽이 생각보다 더 높다”며 “해외 업체는 덮어놓고 의심부터 한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스타트업은 한국 기업임을 숨기는 전략을 쓴다. 해외 서비스에 대한 일본 국민의 수용도가 낮아서다. 지금은 일본 정부가 DX 정책을 위해 해외 스타트업을 적극 유치하고 있지만 일본 내 서비스 점유율이 높아지는 순간 바로 견제가 시작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정부는 라인야후 사태가 IT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당장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도쿄에 코리아스타트업센터를 열고 한·일 공동 벤처펀드 조성을 협의한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부처들이 라인 사태가 마치 다른 나라 일인 양 군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만 모든 대응을 맡겨놓고 다른 부처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사태가 자칫 외교 갈등으로 비칠까 경계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 마련에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라인 사태는 단순히 기업 한 곳의 경영권 문제가 아니다. 일본 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다.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부가 데이터 주권과 자국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 IT산업 주도권의 향방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국 플랫폼 정책은 도통 방향성을 읽기 힘들다. 부처들이 온라인플랫폼법 등 플랫폼 규제를 경쟁적으로 추진하다가 잠정 보류한 게 대표적이다. 국가 차원의 합리적인 대응과 치밀한 산업 전략이 없다면 지금 일본 공략에 나선 스타트업들이 수년 후 제2, 제3의 라인야후 사태를 겪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해외에 내보내는 당장의 스타트업 숫자만 양적으로 늘린다고 능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