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주 4.5일 법제화하라"는 현대차·기아노조
“총선에서 공약했던 주 4.5일 근무제 법제화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기아 노조)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게 지난 2일 보낸 ‘주 4.5일제 법제화 제안 건’ 공문의 핵심 내용이다. 기아 노조는 6개 문단에 걸쳐 “올해 임단협에서 주 4.5일제 도입을 회사에 강력히 요구할 것이며, 이른 시일 내 주 4.5일제 법제화와 관련해 당 대표와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요청한다”고 했다.

주 4.5일제를 들고나온 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도 마찬가지다. 현대차 노조는 8일 대의원회에서 “매주 금요일에 지금의 절반인 4시간만 근무하는 안건을 올해 임금협상 요구안에 담겠다”고 했다. 올해 성과급은 4000만원 이상이 적절하다는 자체 설문 결과도 첨부했다.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을 많이 받는 건 모든 직장인의 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근로시간을 줄이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차·기아 노조가 한 가지 빼놓은 게 있다. 주 4.5일제 도입의 전제조건이 ‘생산성 향상’이란 것이다.

앞서 근로시간을 단축한 해외 정보기술(IT) 기업은 집중근무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1분 단위로 업무를 점검했다. 출근 후 휴대폰 사용은 물론 SNS 접속도 차단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오가는 시간도 계산했다. 그래야 회사가 생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생산성 향상이라는 전제조건 없이 근로시간 단축에만 초점을 맞춘 주 4.5일제 요구는 순서가 바뀐 것이다.

현대차·기아 노조가 앞으로 줄어드는 근로시간만큼 생산성을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했는지 묻고 싶다. 해외 정보기술(IT) 기업처럼 출근 후 흡연시간 계산 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도 궁금하다.

올 1분기 세계 전기차 판매량을 보면 중국 BYD는 58만 대(전년 동기 대비 9.9% 증가)를 팔았다. 세계 1위다. 지리차·상하이차·창안차 등 다른 중국 자동차 회사도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을 최대 59% 늘렸다. 세계 10대 전기차 판매 기업 중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든 기업은 미국 테슬라(-2.4%)와 현대차·기아(-0.8%)뿐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BYD가 1000만원대 전기차를 내놓을 수 있었던 힘으로 중국의 풍부한 고숙련·저임금 노동력을 꼽았다.

현대차·기아 노조가 정치권의 힘을 빌려 생산성 향상에 대한 고민 없이 근로시간 단축만 요구한다면 세계 전기차 판매 기업 순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