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재산세 더 내겠다"는 빌라 주인의 이상한 호소
국토교통부는 올해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확정하기 위해 지난 3월 19일부터 4월 초까지 3주간 의견 청취를 받았다. 결과는 의외였다. 전체 이의신청 제출 건수는 최근 5년 새 가장 적은 6368건이었지만, 이 중 81%에 달하는 5163건이 ‘공시가 상향’을 요구했다.

공시가격은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양도세 등 과세표준 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다. 이의신청자 10명 중 8명이 “세금을 더 내게 해달라”고 주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이의신청자 중 다세대·연립주택 등 이른바 빌라 소유자가 4000여 명으로 많았다. 다세대주택 의견 접수 중엔 96.9%(3563건)가 공시가격을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빌라 주인이 공시가 상향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내야 할 세금보다 ‘역전세’(이전 계약보다 전셋값 하락) 피해가 더 우려돼서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전세 사기 예방을 이유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기준을 개편했다. 결과적으로 가입 가능한 보증보험 액수가 공시가의 150%에서 126%로 줄었다. 예를 들어 공시가 1억원인 주택이 예전엔 1억5000만원까지 반환보증 가입이 가능했지만, 제도가 바뀐 지난해 5월부터는 보증금 1억2600만원까지만 가입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시장은 초토화됐다. 매매가와 전세가는 동반 하락하고 거래도 잠겼다. 월세를 원하는 세입자와 전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의 간극도 더 벌어졌다. 전국 빌라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국토부 실거래가)은 2021년 34% 수준에서 올 1월 56%대로 급등했다. 정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최대치다.

“보증보험이 전세 사기에 악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커지는 것은 전세제도와 빌라시장이 근본적으로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어서다. 수십 년간 반복돼 온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사태를 경험하면서 소비자 사이에선 거래 시스템과 집주인, 공인중개사조차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결국 빌라시장에서 보증보험 가입 액수는 일종의 ‘전셋값 상한선’으로 자리 잡게 됐다.

지난해 5월 도입된 새 보증보험 기준은 다음달부터 임대사업자에게 의무 적용된다. 최근 1년간 빌라 전세시장에서 벌어진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오랜 기간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한 빌라시장과 전세 시스템의 신뢰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세금을 더 내겠다”는 빌라 집주인의 황당한 공시가격 상향 주장 배경에 비정상적인 정책이 있다는 점을 정부가 깊이 되새겨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