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일 산업협력 '잃어버린 6년'
“한국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크게 이겼다던데 어떻습니까.”

지난 22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산업장관 회담과 일본 기업의 대(對)한국 투자신고식이 끝난 뒤 일본 측 참석자가 조심스레 건넨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일본에선 이번 한국 총선 전 ‘모시민(もし民)’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혹시’라는 뜻의 일본어 ‘모시(もし)’에 민주당을 지칭하는 ‘민(民)’을 합친 신조어다. 혹시 민주당이 이기면 한·일 관계 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담긴 단어다.

정치갈등 대가 치른 기업들

이날 한·일 산업장관 회담이 열리기까지 6년이 걸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사이토 겐(齋藤健) 일본 경제산업상은 양국 경제계 간 협력을 촉진하기로 했다. 한·일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까지 공조해 주어에 ‘양측’, 서술어에 ‘합의’라는 단어를 썼다.

한·일 산업 협력이 ‘잃어버린 6년’을 보내는 동안 양국 기업인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은 장면은 2019년 7월 산업부와 경제산업성 과장급 간 열린 ‘골방 회의’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 일본 정부가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3개 핵심 소재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경제 보복에 나선 뒤 처음 열린 회의였다.

당시 일본은 장소 선정부터 한국을 홀대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냈다. 경제산업성 본관이 아닌 별관의 골방 같은 곳에 테이블 두 개를 붙여 회의장을 만들었다. 양측은 악수, 명함 교환 같은 인사도 하지 않았다. 골방 회의의 성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일본은 그해 8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도 제외했다. 한국은 한 달 뒤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양국 협력은 미래 생존 전략

정치·외교가 경제·산업을 뒤흔든 대가는 기업들이 치러야 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은 일본 신에쓰화학과 스미토모화학 등의 소재를 받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만든 뒤 애플, 화웨이, 소니 등에 공급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부회장은 직접 일본 출장길에 올라 소재 긴급 물량을 확보하느라 뛰어다녔다. 피해를 본 것은 일본 기업도 마찬가지다.

피해 규모는 이후 양국의 수출입 통계에서 드러났다. 한국의 대일본 수출은 2년 새 17.7% 쪼그라들었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 역시 같은 기간 525억달러에서 463억달러, 447억달러로 줄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지난해 3월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윤석열 대통령이다. 일본은 곧바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해제했고, 한국은 WTO 제소를 철회했다.

양국 기업들도 다시 뛰고 있다. 삼성전자는 400억엔(약 3500억원)을 투입, 일본 요코하마에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거점을 세우기로 했다.

격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 한·일 산업 협력은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양국 모두 대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손을 잡았을 때 윈·윈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이번 회담에서 탈탄소·신에너지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배경이다. 다시 정치가 경제를 뒤흔들면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