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이어 중동에서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13일 이란이 이스라엘에 미사일 수백 발과 드론 공격을 퍼부은 데 이어, 19일 이스라엘은 이란 본토에 보복을 감행했다. 지구촌은 이제 동시다발적인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이 쓴 <세 개의 전쟁>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전쟁이란 렌즈로 파헤친 책이다. 평소엔 모호하거나 은밀하게 감춰진 강대국 정치의 민낯이 전쟁이란 특수 상황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이 다루는 전쟁은 세 종류다. 20세기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리고 긴장관계가 심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가상의 대만전쟁이다.이들 세 개의 전쟁은 싸움의 주체와 시기, 갈등 원인 등이 달라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의 본질이 모두 같다고 주장한다. 강대국 간 세력권의 충돌이 갈등의 핵심이고, 국제 정치 무대에서 패권 국가로서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수해야 하는 이익선(利益線)을 위한 다툼이라는 점에서다.태평양전쟁은 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가 시발이었다. 일본은 서구 세력의 침탈에 맞서 아시아 민족들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한 ‘대동아전쟁’으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지역 내에서 미국과 영국 등을 몰아내고 패권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우크라이나전쟁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 급속히 추락한 지정학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는 풍부한 농업 기반과 함께 공업 생산력을 갖춘 인구 5000만 명 이상의 국가다. 러시아의 흑해 접근을 보장하는 핵심 요충지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를 차지하면 지역 패권을 강화할 수 있다.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전쟁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앞세운 미국의 유라시아 패권 장악에 대한 러시아의 반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 전쟁을 단순히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문제를 넘어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전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전쟁은 부담인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시절 훼손된 미국의 대외 리더십과 대유럽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기도 하다.저자는 태평양전쟁의 원자폭탄 투하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이 보여준 대로 현대전의 상수가 돼 버린 민간인 학살 우려도 내비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7만여 명의 시민이 즉사했다. 발전소, 병원, 학교 등에 대한 러시아 폭격의 희생양도 전투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이다. 미국 또한 열화우라늄탄과 집속탄 등 대규모 민간인 살상을 초래할 수 있는 비윤리적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저자는 민간인 대량 살상을 전쟁 수행의 불가결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비윤리적인 사고가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강화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국가 전체 산업과 인프라가 집결되는 총력전 양상을 띠면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흐려졌다는 설명이다.가상의 대만전쟁을 다루는 마지막 3부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미·중 패권 경쟁의 시험대로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바로 대만해협이라고 강조한다. 대만의 위치로 인한 지정학적 함의 때문이다. 대만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자리에 있고 중국이 태평양으로 뻗어가는 전략적 요충지다. 반대로 미국 관점에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저지선이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의 견제 균형이 무너져 대만전쟁이 벌어졌을 때 예상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핵전쟁 위험도 경고한다.책은 한국이 주요 행위자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지극히 한국을 위한 책이다. 강대국을 움직이는 동기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같고, 전쟁 정당화 논리도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저자는 강대국의 눈으로 세상을 조망해보자고 제안한다. 제국처럼 행동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제국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강대국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본질적인 의도가 무엇인지 등을 읽어낼 수 있다면 국제질서가 격변하는 시기를 맞아 우리의 외교안보적 판단이 더욱 정확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영국에서 우리의 국회의원 격인 하원의원은 650명이다. 한국의 300명은 물론 미국의 435명보다 많다. 그런데 본회장에 마련된 좌석엔 대략 427명만 앉을 수 있다. 나머지는 서 있어야 한다.최근 출간된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에 따르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 본회장에 있지 말고 소속 분과회를 가든 지역구를 가든 실질적인 일을 하라는 것이다. 책을 쓴 재영 칼럼니스트 권석하 씨는 “결국 하원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회의실에 앉아 여야 수뇌부의 토론을 듣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라고 했다. 권씨는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영국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쓴 그는 이번 책에선 영국의 정치와 왕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권씨는 의원 수가 많을 때의 장점도 설명한다. “주민들이 의원을 만나는 일부터 어렵지 않다. 거의 모든 의원이 매주 지역구 사무실에서 유권자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정해진 시간에 의원 사무실에 가서 기다리면 면담할 수 있다.”영국 하원의원은 특권도 거의 없다. 2024년 기준 의원 세비(연봉)는 8만6584파운드(약 1억4100만원)로 한국(1억5500만원)보다 적다. 영국 장관은 개인 전용 관용차가 없다. 필요할 때마다 배차받아야 한다. 영국 총리 관저는 공적 구역과 가족 구역이 나뉘어 있어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총리가 개인적으로 내야 한다. 식재료비, 수도 사용료, 전기 사용료, 지방세 등이다.“부인이 직장인이었던 토니 블레어와 데이비드 캐머런은 일하다가 뛰어 올라가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지고 내려와 먹었다. 아니면 관저 지하실의 직원 식당에서 직원들과 똑같이 5파운드를 내고 사 먹어야 한다. 영국의 기관이나 회사 식당은 무료 점심을 제공하지 않는다.”물론 영국 정치인도 많은 논란을 일으킨다. 하원의원들의 성추행, 성희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부자 후원자로부터 지원받은 초호화판 배달 식사를 즐겨 비난받았다.영국 정치와 왕실에 대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영국 정치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이 부분은 저자가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는지 주의할 필요가 있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미국 대학입시 자격시험(SAT)에서 최상위 10%의 점수를 받았다. 주어진 문제를 풀고 정답을 찾는 능력은 인간보다 AI가 우월해질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AI로 대체됩니다>는 미국 명문대 입시와 명문 기숙 학교, 한국과 중국의 교육시장 등 다양한 교육 현장을 접한 저자가 내놓은 자녀교육서다. 다년간 교육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만난 실제 아이들의 사례, 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자 교육 디렉터로서 가정과 학교에서 적용한 방식 등을 토대로 현실적이고 유용한 조언을 내놓는다.저자에 따르면 최근 하버드대 등 미국 명문대들은 개인적 특성을 중시한다. 적극성, 인내력, 협력할 줄 아는 능력, 의사소통 능력 등의 ‘소프트 스킬’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스펙보다 끈기, 창의성, 몰입 등 남다른 개인적 자질을 지닌 사람을 발탁한다는 설명이다.책은 자녀를 체인지 메이커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테이블 세팅을 달리해 막힘 없이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팀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할 줄 아는 능력을 높여준다. 그 밖에 디자인 싱킹을 통해 작은 아이디어도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능력을 키우고, 게임 시스템을 활용해 아이 내면에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해줄 것,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끈기 있기 도전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등이다.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