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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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팜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최초로 미국에 직접 판매망을 갖춘 회사다. 자체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2020년 5월 미국에 출시함과 동시에 직판을 시작했다.

직판은 국내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꿈이다. 초기 판매관리비(판관비)는 들지만, 한번 제대로 구축하고 나면 신제품을 판매망에 얹으면 얹을수록 수익성과 효율성이 배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해외 유통사에게 주던 20~30% 가량의 수수료도 회사 몫으로 챙겨올 수 있다.

올해로 SK바이오팜은 미국 직판망을 가동한지 4년째를 맞았다. 그새 미국 현지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인력은 100명으로 늘어났다. 2022년 12월 취임한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이들을 한명 한명 챙기는 세심한 리더십을 발휘해 미국 매출을 끌어올리고 있다.

"4년 전 직판 결정은 성공적인 판단"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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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코프리의 미국 매출은 2021년 782억원, 2022년 1692억원, 2023년 2708억원으로 매년 급성장중이다. 뇌전증 발작을 얼마나 줄여주는지, 약 효능이 얼마나 좋은지 등 제품의 질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약을 미국에 팔기 위해서는 영업과 마케팅이 핵심이다.
임대철 기자
임대철 기자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사진)은 공식 취임한지 한달 만인 2023년 1월 바로 미국 라스베가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미국 현지 영업의 ‘엔진’이 누구인지, 직접 발로 뛰는 세일즈맨인지, 이들을 관리하는 지점장인지, 아니면 판매전략을 세우는 세일즈헤드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1월 라스베가스 센프란시스코, 2월 샌디에이고, 3월 로스엔젤레스 오렌지카운티 피닉스, 4월 시애틀 시카고, 5월 애틀란타, 6월 올랜도 등 지난 1년간 미국 15개 도시를 다녔다. 영업팀 전원을 만나고, “현장에 답이 있다” “나도 당신들과 같은 영업사원”이라는 말을 남기며 같이 수백킬로미터씩 뛰었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제약 영업은 사실 영업 중에서도 난도가 높은 편이다. 영업사원보다 훨씬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의료진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너무 똑똑한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 직판은 아시아 회사 영업사원이 미국 현지 의료진을 상대로 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다.

SK바이오팜 내부 관계자는 “(직판은)위험한 결정이었지만 4년 뒤 지금에서 돌아보니 성공적인 판단이었다”며 “SK바이오팜이 지난 3~4년간 얻은 경험은 어디서도 얻지 못할 경험”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올해 연간기준 흑자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직판망 가동이 실제 수익성 확보로 이어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직판망은 K-신약의 해외진출 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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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팜의 미국 직판망 구축은 단지 SK바이오팜의 약을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해외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국내 회사가 갖춰놓은 유통망을 통해 약을 파는 것도 가능해진다. 또 SK바이오팜 유통망에 해외 제약사의 약을 얹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SK바이오팜 내부 관계자는 “최근 한 아시아 바이오 기업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을 허가받았는데 ‘SK바이오팜이 (약을) 미국에 팔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해 왔다”며 “아시아 국가들부터 SK바이오팜에 부탁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10년 째 바이오투자를 이어오고 있는 정영관 유안타인베스트먼트 VC부문 대표도 자체 글로벌 판매망 구축을 계기로 K-바이오 산업에도 ‘우주 대폭발(빅뱅)’과 견줄만한 성장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아무리 신약을 개발하고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열심히 연구해도, 결국 해외 시장에 팔기 위해서는 해외 판매망을 이용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힘들게 개발해봤자 결국에는 외국회사 배 불리는 셈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SK바이오팜 등 자체 판매망을 구축하는 사례가 나온 것은 엄청난 신호탄”이라며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이 국내 기업에게 기술수출을 하고, 국내 기업이 구축한 세계 판매망에 의약품을 싣는 선순환이 빠르면 10년 안에 올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 미중 갈등이 바이오 산업으로 번지면서 미국 내 밸류체인 확보도 덩달아 중요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중요한 원료, 중간재, 포장 등의 핵심기능이 다 미국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SK는 위탁개발생산(CDMO) 회사인 SK팜테코도 미국 현지에 두고 있다. SK바이오팜을 넘어 그룹 차원에서도 생산-유통-판매로 이어지는 미국 현지 밸류체인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은 영원히 봉합되지 않을, 계속해서 이어질 이슈”라며 “결국 최대 의료시장인 미국에서 약을 팔기 위해서는 초기 밸류체인부터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