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 케이옥션 제공
이중섭의 '시인 구상의 가족'. 케이옥션 제공
얼어붙었던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 올 들어 훈풍이 불고 있다. 시장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한동안 경매에서 자취를 감췄던 고가의 수작들도 다시 출품되기 시작했다. 제 값을 받고 작품을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커진 덕분이다.

18일 미술계에 따르면 케이옥션이 올 들어 진행한 메이저 경매 낙찰총액은 1월 23억원, 2월 32억원, 3월 42억원 등으로 매달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경매에서는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 S8708-5’(9억5000만원), 베르나르 프리츠 ‘Gawk’(2억원) 등 주요 작품들이 성공적으로 새 주인을 찾았다. 지난해 고가 작품 중 상당수가 유찰되거나 출품이 취소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서울옥션도 올해 분위기가 좋다. 지난 3월 경매에서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50억원에 낙찰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높고 값도 비싸지만, 불황기에는 좀처럼 경매에 나오지 않는다. 작품이 유찰돼 작품 가치를 깎아 먹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매에서는 제 값에 새 주인을 찾았다. 김창열의 100호 크기 대작 ‘물방울’이 9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런 훈풍이 계속될지는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의 4월 경매 결과에서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수작들이 이 달 경매에 여럿 나왔기 때문이다. 케이옥션은 오는 24일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4월 경매를 연다.

총 130점, 약 148억원어치가 출품되는 이번 경매의 대표작은 이중섭의 작품 ‘시인 구상의 가족’이다. 이중섭은 1955년 친구인 구상의 집에 머무르던 중 구상이 아들과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 단란한 친구의 가정을 부러워하는 마음,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등이 작품에 담겨 있다. 화면 오른쪽에 앉아 가족을 바라보는 남성이 이중섭이다. 경매가는 14억원에서부터 시작한다.
마티스의 '재즈'에 실린 판화 20점. 케이옥션 제공
마티스의 '재즈'에 실린 판화 20점. 케이옥션 제공
이 밖에도 김환기의 뉴욕 시대 점화 '22-X-73 #325'(시작가 35억원), 1955년작 '산'(시작가 20억원) 등 고가의 대작들이 경매에 나왔다. 현대미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앙리 마티스의 1947년 작 아티스트 북 '재즈(Jazz)'도 눈에 띈다. 추정가는 9억5000만~12억원이다.

서울옥션은 오는 23일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 본사에서 제178회 미술품 경매를 연다. 약 72억원 규모 113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 작가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이다. 달팽이 걸음 연작이 경매에 출품된 건 이번이 처음으로, 해당 작품은 2007년 인천 부평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한국-터키 수교 50주년 기념전'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의 결과물이다. 추정가는 2억~3억원이다.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 서울옥션 제공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 서울옥션 제공
아야코 록카쿠의 '무제'. 서울옥션 제공
아야코 록카쿠의 '무제'. 서울옥션 제공
다양한 국적과 장르, 시대의 작품이 고루 나온 게 이번 서울옥션 경매의 특징이다. 하종현의 '접합 15-164'(3억2000만~6억원), 정상화의 '작품'(1억8000만~4억원) 등 단색화 작품에서부터 아야코 록카쿠의 '무제'(5억~8억원) 등 해외 작품, '모란도', '곽분양행락도', '요지연도' 등 수준 높은 조선시대 채색장식화 병풍들이 새 주인을 찾는다.

출품작들은 경매 당일까지 각사 본사에 전시된다.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