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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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형 당일 사형수에게 집행 사실을 알리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형수 두 명이 ‘사형 집행 당일 알려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낸 위헌 소송을 기각한 것이다.

16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사카지방법원은 사형수 두 명이 ‘사형 집행 당일 고지는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며 낸 위헌 소송을 지난 15일 기각했다.

앞서 사형수 측은 약 70년 전 사형 집행 이틀 전에 고지받은 한 사형수가 언니들과 주고받은 음성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며 과거엔 사전에 고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마지막 면회 기회도 주지 않고, 불복을 통한 유예도 허락하지 않는 현행 제도는 ‘적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으면 형벌을 부과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31조에 위배된다고 호소했다.

또 유엔(UN) 인권기구가 ‘적절한 때 사형 일시를 알리지 않는 것은 학대’라고 한 점을 들어 ‘사전에 고지하는 것이 사형 존치국의 표준’이라고 강조했다. 당일 고지는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이 없어 헌법 13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일본 정부 측은 ‘사형 고지에 대해 정한 법령은 없다. 헌법은 사형수에게 사전 고지를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과거 사형 전날 고지받은 사형수가 사형 전에 자살했던 적이 있어 당일 고지로 바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당일 고지는 원활한 사형 집행과 자살을 막기 위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정부 손을 들어줬다. 판결에서 ‘사형 확정자에게 집행 시기를 사전에 알 권리는 보장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일 고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사형 판결 취소까지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일 고지는 사형수 심적 안정이나 원활한 집행 측면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못 박았다.

사형수 변호인 측은 법원 판단에 불만을 드러내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변호인 측은 ‘사형 당일 고지’ 외 사형 운용을 둘러싼 두 가지 소송도 같은 법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현행 ‘교수형’이 헌법 36조가 금지하는 ‘잔학한 형벌’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선 사형제를 운용하는 주(州)도 ‘잔학하지 않은’ 약물 주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재심 청구 중 집행’이다. 과거 사형 확정 후 재심이 시작된 사례를 들어 ‘사형은 집행되면 돌이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7년을 끝으로 더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올해 1월엔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거절당하자 그녀의 부모를 살해한 고등학생 미성년자에게도 사형을 선고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전 세계 199개 국가 중 144곳이 사형제를 폐지 또는 정지한 상태다. 누명을 써 사형을 당했을 경우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안 된다는 이유 등에서다.

일본 국민은 여전히 대부분 사형제를 원하고 있다. 2019년 국가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존속은 어쩔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이 80.8%에 이른다. 그러나 일각에선 사형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선 지난해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형 집행’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해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사형에 대해 “집행하지 않았을 뿐 법에 있는 제도”라며 집행 시설을 점검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에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SNS에서 “법무부 장관은 사형 확정 후 6개월 내 집행하도록 형사소송법에 규정돼 있다”며 집행을 촉구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