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지자체판 '봉이 김선달'
봉이 김선달은 수천냥을 받고 평양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옛이야기 속 사기꾼이다. 그의 사기행각으로 전해지는 여러 일화 중 대동강 물 사건이 대표적인 건 액수도 액수려니와 조선시대에 공짜 강물을 판다는 발상 자체와 깍쟁이 한양 상인들을 속여 넘긴 기발함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물과 공기도 팔고 사는 시대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상상을 뛰어넘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을 만나게 된다.

1980년부터 데니스 호프라는 미국인이 달의 토지를 팔아 140억원을 벌었다. 유엔 ‘외기권조약’에 따르면 우주의 어떤 것도 특정 국가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개인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항이 없다. 그 허점을 이용한 호프는 샌프란시스코법원에 달에 대한 소유권 취득 소송을 내고 일부 승소했다. 그 후 ‘달 대사관’이란 회사를 차려 달 분양에 나섰고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톰 행크스 등 유명인들이 구입자 명단에 대거 이름을 올렸고 국내에선 한 팬클럽이 가수를 위해 축구장 두 개 규모의 달 부동산을 사기도 했다.

제주에 이어 강원·전북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김선달의 후예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자체들은 “햇빛과 바람은 우리 지역 것”이라며 신재생사업자에게 태양광·풍력으로 번 돈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태세다. 특별법으로 이익 공유를 강제하는 것인데 일부 기초지자체는 그마저도 없이 이미 조례만으로 돈을 걷어가고 있다. 태양광발전 이익의 30%를 징수해 주민들에게 ‘햇빛연금’을 지급하는 신안군의 사례를 놓고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못 하느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한다.

물론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실제 피해를 보는 주민에게 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이익 공유를 강제하는 방식은 기업엔 결국 이중과세가 된다. 해상풍력 사업 등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투자 위험도 큰데 이익까지 공유하라고 하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그 부담과 피해는 돌고 돌아 국민 몫이 될 것이다. 사업자에게 적정 세금을 걷으면 됐지 바람·햇빛 사용료까지 내라는 건 과도하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