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조경예술가] 풀꽃·나무로 땅에 쓴 詩 한국조경의 대가…정영선
조경은 인문·과학 지식을 응용해 땅을 가꾸는 예술이다. ‘한국 조경의 대모’ 정영선의 정원은 한 편의 시와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결하면서도 때가 무르익으면 풍성해지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정영선은 현대적인 개념의 조경을 한국에 정착시킨 1세대 조경 예술가다. 전쟁 후 헐벗은 산천을 되살리겠다는 꿈을 위해 서울대 농대에 입학한 그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를 1호로 졸업하고, 내친김에 여성 최초로 국토개발기술사까지 따내며 본격적인 조경 작업에 발을 디뎠다. 그의 작업 기록은 곧 한국 조경의 역사다. 국가 주도의 대형 공공 프로젝트부터 한국에서 손꼽히는 민간 정원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예술의전당, 대전 엑스포, 경춘선 숲길, 호암미술관 희원 등의 조경 설계를 모두 맡았다.

정영선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빌려와 사람과 관계를 맺는 ‘차경(借景)’의 원리를 비롯해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한국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을 구사한다. 지난해 세계적인 업적을 이룬 조경가에게 주는 세계조경가협회(IFLA) 제프리 젤리코상도 받았다.

정영선의 조경 철학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연 첫 조경 전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에서 9월 22일까지 경험할 수 있다. 17일 개봉하는 영화 ‘땅에 쓰는 시’에서도 그의 인생을 만날 수 있다.

유승목 기자 moki912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