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제언…"안전 최고책임자, 국무회의도 못 가는 나라" 쓴소리
"안전이 정책 최우선 키워드 돼야…국민도 안전수칙 철저히"
재난 피해자 보듬을 '트라우마 센터' 확충 등 제안
[세월호 10주기] ⑤"재난, 심하다 싶을 정도 대비해야 우왕좌왕 없다"
304명의 희생자를 낳으며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2014년의 슬픔을 짊어지고 2024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때보다 과연 얼마나 안전해졌을까.

전문가들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침수 등 세월호 참사 후에도 끊이지 않은 대형 사고들을 언급하며 정부는 물론 국민 안전의식 또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법규와 제도 개선에 집중하고, 국민도 스스로를 보호할 안전수칙 준수 및 교육·훈련에 참여해 안전한 터전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월호 10주기] ⑤"재난, 심하다 싶을 정도 대비해야 우왕좌왕 없다"
◇ "국무회의도 못 가는 안전 최고책임자…여전히 뒤편"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어느 나라든 정부 조직을 보면 그 나라가 어느 분야를 중시하는지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안전이 뒤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만들어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으나, 현재는 행정안전부의 차관급인 본부장이 안전 관련 최고 직급"이라며 "안전 관련 최고 직급이 국무회의도 참석할 수 없는 구조인데, 제대로 된 재난안전대책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세월호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대형 참사들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의 안전 의식은 제고됐으나, 법과 제도가 이를 따르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재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 역량을 강화하고, 끊임없는 반복 교육 및 훈련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동헌 한국산업관계연구원 부설 재난안전원 원장은 '국가·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함을 기본이념으로 한다'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2조를 언급하며 "어떤 정책을 펼 때는 '안전' 여부를 최우선 키워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비상행정체계로 가야 하는 만큼, 행정가는 정확한 지식 및 정보와 대응 절차를 숙지해야 한다"며 "재난 안전관리 담당 공무원들처럼 선출직 공직자들도 제대로 된 재난안전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송창영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은 "재난 발생 시 현장의 초기 대응 역량이 여전히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어떤 재난이 일어나도 대응할 수 있는 종합 체계를 마련하고 교육과 훈련을 끊임없이 반복해 실제 재난이 일어났을 때 우왕좌왕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10주기] ⑤"재난, 심하다 싶을 정도 대비해야 우왕좌왕 없다"
◇ "개인 안전수칙도 철저…피해자 지원 시설·서비스 확충해야"
전문가들은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만큼이나, 개인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개인이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건 '꿈만 가지고 노력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국가와 지자체의 재난관리 체계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조직화·체계화됐다"며 "그런데도 사고가 반복된다는 건 국가 시스템 이외에 다른 사고 원인이 있다는 것"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점점 삶의 형태나 도시구조, 사회환경이 다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공공이 개인의 안전을 맞춤형으로 챙겨줄 수 없다"며 "개인 스스로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각자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안전 수칙'을 눈여겨보는 것이 안전의식의 출발이라고 했다.

국민이 안전 관련 제도 및 정책을 숙지하고 이를 일상에 적용하려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의견도 나왔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 제도가 생기면 그에 맞춰 국민의 교육도 병행돼야 제도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이 좀 미흡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도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국민이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 국민의 안전의식을 체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창영 한국재난안전기술원 이사장은 민간이 조직을 구성해 자신의 안전을 직접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송 이사장은 "일본은 '초나이카이(정내회·町內會)', 미국은 '서트(cert)'라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자원봉사 단체를 중심으로 민간에서도 안전에 대비하고 있다"며 "우리 국민도 재난 발생 시 잘잘못을 따지며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대응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재난으로 고통받는 당사자는 물론 일반 대중의 충격도 사회가 함께 어루만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참사를 목격한 분, 함께 구조에 투입된 분, 인근 거주민 등 간접적으로라도 엮여 있는 분들의 마음 건강을 위해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신체적인 장애보다 후유증이 오래가고 심각한 것으로 보고가 돼 있다"고 전담 기관 확충을 주장했다.

국가 트라우마센터는 서울에 1곳, 지역에 권역별 트라우마센터 4곳이 설치돼 있지만, 이용자 확대를 위해 추가적인 시설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어 왔다.

임 교수는 재난으로 희생된 사람뿐 아니라, '남겨진 이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난이나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 쓰이는 자원에 비해, 유가족에 대한 상처를 보듬어주는 정책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유족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통합 컨트롤센터' 설립을 제안했다.

임 교수는 "유족들은 재난 발생 이후 세상과 단절한 뒤 숨어 지내려는 분들이 많아서 '찾아가는 심리치료 서비스' 같은 것들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