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한테 투표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이번엔 종이도 엄청 길고….”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3동 제3투표소 앞에서 만난 송지연 씨(35). 그는 투표용지 두 장을 받아 들고 머뭇거리며 기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투표를 마친 후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왔다. 기표소에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3분 20초 걸렸다.

송 씨는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가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만 19살 때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했는데도 투표는 여전히 그에게 어렵다.
10일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치고 나온 송지연 씨(35). /김다빈 인턴기자
10일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치고 나온 송지연 씨(35). /김다빈 인턴기자
○어렵기만 한 선거공보물

후보자와 정당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누구를 뽑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는 송 씨. 집에 선거공보물이 왔지만 ‘비례대표’나 ‘위성정당’ 같은 단어가 이해하기에 어려웠다고 했다. 공약도 잘 이해가 안 돼서 “그냥 느낌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찍었다”고 말했다.

알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소통’의 대표 백정연 씨는 “공보물에 한자어가 많고 공약들이 개조식으로 표현돼 있다”며 “인지의 제한이 있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지연 씨가 활동하고 있는 발달장애인 단체 ‘피플퍼스트’에서는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선거공보물을 요구하고 있다. 송 씨는 “해외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쉬운 선거공보물을 보내준다는데 한국에는 그런 게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실제로 영국과 스웨덴의 선거공보물은 장애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주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글 읽을 줄 몰라..사진·기호 넣어줬으면”

글자가 빼곡한 투표용지도 발달장애인의 투표를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발달장애인이 많기 때문이다.

기자가 10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 ‘샬롬의집’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11명 중 글씨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2명뿐이었다. 이곳에 사는 전은샘 씨(55)는 “종이가 길고 정당이 너무 많아서 고르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신영미 씨(39)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무나 찍었다”며 웃었다.
10일 장애인 거주시설 ‘샬롬의집’ 입소자들이 산책에 나선 모습. /김다빈 인턴기자
10일 장애인 거주시설 ‘샬롬의집’ 입소자들이 산책에 나선 모습. /김다빈 인턴기자
전지혜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달장애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후보자 사진이나 정당 로고가 들어간 투표용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만과 아일랜드 등 50개국 투표용지에는 정당 로고나 후보 사진이 들어간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선거 절차와 방법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기순 샬롬의집 원장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문가를 파견해 교육을 진행하거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영상 교육자료를 제작해 배포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들도 실질적으로 참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후보와 정당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김다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