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소격동과 안국동 근처에 사간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모네가 그 동네에 살고 계셨던 덕분에 유년 시절 중 꽤 많은 시간을 거기서 보냈습니다. 지금은 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열린송현 등의 근사한 공유공간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친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개발이 제한된 옛 동네여서 드문드문 빈집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그곳을 ‘폐가(廢家)’라고 알려주셨는데, 오래되어 빛바랜 목조 주택의 멋을 모를 나이였으니 무섭게만 느꼈습니다. 오히려 아저씨가 된 이후에는 폐가나 폐허를 바라보며 ‘그곳이 온전했을 시대’를 상상하며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어느덧 버려지거나 비워진 곳을 새롭게 바라보는 즐거움을 알게 된 모양입니다.

폐허와 나무

경칩에 이르지 않아 쌀쌀했던 계절에 미륵사터와 왕궁리 유적을 다녀왔습니다. 정림사터, 감은사터에 이어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습니다. 이 장소들은 역사적 기록이기 이전에 이미 본 모습 대부분이 소멸된 폐허입니다. 다만 단순히 ‘폐허(廢墟)’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근사하고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장소이니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지를 못했습니다.
경주 감은사터 / 필자 제공
경주 감은사터 / 필자 제공
모든 폐허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왕궁리 유적의 경우 벚나무와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나무는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거나 낙엽이 쌓이는 계절까지, 언제든지 여유롭게 이 텅 빈 장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줍니다. 수천 년 전 익산의 평야지대 한복판, 기분 좋을 만큼 봉긋하게 솟은 언덕 위에는 궁궐이 자리 잡았을 터인데 그때 나무 곁을 거닐었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나무 그늘에 기대어, 아마도 여러 갈래의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곡창지대를 바라보며 풍년을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벚나무의 수명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가 보는 나무는 백제의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익산 왕궁리 유적과 나무 / 필자 제공
익산 왕궁리 유적과 나무 / 필자 제공
미륵사터는 가람배치(불교건축의 전통적인 배치 방식)에 맞춰 세운 두 개의 석탑과 버드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00년 전에 촬영된 미륵사터와 석탑 사진을 보면 평야지대의 한 가운데에 다 허물어져 가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말 그대로 ‘폐허’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찰터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만큼 경작지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죠. 다행히 지금은 여러 번의 복원을 통해 근사한 위용을 뽐냅니다. 미륵사터에 이르는 길에 자리 잡은 연못과 버드나무도 헛헛한 마음을 채워줍니다. 연못에 비친 석탑을 바라보면 불현듯 수천 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익산 미륵사터 / 필자 제공
익산 미륵사터 / 필자 제공
익산 미륵사지 석탑 / 필자 제공
익산 미륵사지 석탑 / 필자 제공
영화 <툼레이더(2001)>와 <화양연화(2000)>의 배경이 되기도 한 앙코르와트는 그 자체로 인류가 남긴 가장 거대한 폐허 중 하나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일부 공간에 한해 제 모습을 갖췄지만, 여전히 완전한 복원까지는 갈 길이 먼 폐허입니다. 그 가운데 타 프롬(Ta Prohm) 사원에는 스펑(Spung, 비단목화나무의 종류)나무와 이엥(Chheu teal)나무가 있어 ‘이 장소의 주인이 누구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합니다. 이 두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사원을 천천히 파괴하면서 동시에 풍화 속에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꼭 붙잡아두었습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의 『내 젊은 날의 숲』에는 ‘나무는 젊어지는 동시에 늙어지고, 죽는 동시에 살아난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와 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타 프롬 사원을 보며 김훈 선생이 나무의 영속성에 관해 묘사한 바로 그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수천 년 동안 건축물을 부수면서도 붙들어 잡았던 나무가 폐허로 변한 타 프롬 사원의 격을 높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캄보디아의 타 프롬 사원 / 필자 제공
캄보디아의 타 프롬 사원 / 필자 제공
타 프롬 사원의 스펑나무(왼쪽)와 이엥나무(오른쪽) / 필자 제공
타 프롬 사원의 스펑나무(왼쪽)와 이엥나무(오른쪽) / 필자 제공

비워서 홀가분한 공간

건축가이자 작가인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내 마음의 건축 上·下』을 통해 건축 거장의 작품을 비롯해 안동 하회마을처럼 문화인류학적 가치가 있는 장소를 조명했습니다. 그중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 위치한 산 갈가노 수도원(Abbazia di San Galgano) 터가 유난히 인상적입니다. 폐허가 된 지 5백 년도 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산 갈가노 수도원은 언제나 빈 장소였습니다. 목조 건축 위주의 우리 사찰 터에 주로 주춧돌 정도가 남겨진 것에 비해 산 갈가노 수도원 터에는 벽과 창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산 갈가노 수도원(Abbazia di San Galgano)  / 출처: unsplash, pixabay
산 갈가노 수도원(Abbazia di San Galgano) / 출처: unsplash, pixabay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그 모습을 보며 ‘의연하고 홀가분하다’라고 썼습니다. 그는 산 갈가노를 마치 거대한 조각처럼, 또는 한국의 석탑처럼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산 갈가노 성당은 수백 년 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여파로 버려졌습니다. 종탑 마저 무너지고 벽만 남은 산 갈가노 성당은 그야말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합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다 비워내어 홀가분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 폐허와 정말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산 갈가노 사이 사이마다 토스카나 특유의 파란 하늘이 겹치면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맑고 향기로운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가족들과 꼭 한번 거닐어 보고 싶은 폐허입니다.
산 갈가노 수도원(Abbazia di San Galgano)  / 출처: unsplash
산 갈가노 수도원(Abbazia di San Galgano) / 출처: unsplash

신카이 마코토의 폐허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자신의 작품마다, 구해내지 못한 희생자를 향한 부채의식과 함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내겠다는 사명을 담아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는 종종 지켜내지 못한 폐허가 중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너의 이름은(2017)>에서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려 구하는 마을 이토모리와 호수가 폐허였고, <스즈메의 문단속(2023)> 속에서도 재앙이 일어나는 장소는 항상 폐허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선 버려진 학교, 놀이공원 등이 나오는데, 스즈메가 지금의 장소가 폐허이기 이전에 거닐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기억해내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마치 폐허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해야만 재앙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폐허를 대할 때, 그곳이 끔찍하거나 버려진 장소라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추모하고 기억해야 할 곳이라고 강조하는 듯합니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마음의 폐허, 나무와 요석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장소는 폐허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죠. 살아가다 보면 몸이 아무리 단단해도 마음의 풍화와 침식을 피할 수 없을 때가 참 많습니다. 마음이 폐허가 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그럴 때면 마음속에 평소 생각해두었던 근사한 나무를 심거나 스즈메처럼 요석(要石, 영화 속에서 재해를 막아주는 말뚝)을 좀 마련해보면 어떨까요? 마음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그 자체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봄입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