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강진 후 49시간 동안 여진 487회…한 시간에 한 번은 '경보 문자'
취재진 90여명 몰린 가운데 고사 후 철거 시작…여진에 건물 더 '기우뚱'
[대만강진 르포] 6분에 한번꼴 '여진 공포' 속 40도 기운 건물 철거
"12시 50분께 화롄 지역에서 현저한 지진이 감지됐습니다.

강한 흔들림에 조심하시고, 가까운 피난처에서 몸을 숙이고, 엄폐물에 의지하며 침착하세요.

"
가랑비가 내린 5일 오후 대만 동부 화롄(花蓮)현 중심가.

규모 7.2(미국·유럽 지진 당국은 규모 7.4로 발표)의 강진 발생 사흘째인 이날도 대만 기상서(기상청)의 여진 경보 문자 메시지는 쉴 새 없이 휴대전화를 울렸다.

거의 한 시간에 한 번꼴이었다.

이날은 화롄현 당국이 시내 중심부에 있는 톈왕싱(天王星) 빌딩 철거를 시작하기로 한 날이다.

지상 9층·지하 1층짜리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지난 3일 강진으로 족히 40도는 기울어졌고, 위태로운 모습으로 꼬박 이틀을 보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지 않은 채 통째로 기울면서 외신에서도 집중적으로 소개됐고, 이번 지진을 상징하는 건물이 됐다.

흰색 헬멧과 형광색 조끼를 착용한 화롄현 관계자와 철거 작업자들은 오전 9시께 톈왕싱 빌딩 앞에 모여 '무사 철거'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이들은 순조로운 작업을 비는 사회자 제문 낭독에 맞춰 건물 앞에 차린 제단에 세 번 절했다.

그러나 철거 개시는 계속 늦춰졌다.

당초 오후 1시께 작업을 시작하겠다던 화롄현 관계자들은 낮 12시 50분께 여진이 발생하자 상황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고, 이후 오후 1시 9분과 2시 12분 등 잊을만하면 여진 경보 메시지가 왔다.

대만 기상서에 따르면 3일 오전 7시 58분(현지시간) 첫 지진 후 이날 오전 9시 16분까지 약 49시간 동안 화롄현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여진이 총 487회 있었다.

단순 계산으로 6분에 한 번은 여진이 발생한 셈이다.

[대만강진 르포] 6분에 한번꼴 '여진 공포' 속 40도 기운 건물 철거
비교적 컸던 오후 두 차례 여진에 톈왕싱 빌딩이 전방으로 1㎝ 더 기울어지자 화롄현 당국은 건물과 지면 사이에 대형 H빔 지지대 두 개를 세우고 깨진 유리창부터 떼어냈다.

본격적인 철거 작업은 오후 5시 15분께 시작됐다.

현장에는 굴삭기 6대가 동원됐는데, 이 가운데 팔 길이 42m짜리 1대는 콘크리트 분쇄기를 달고 건물을 위에서부터 부쉈다.

안전 장비를 갖춘 작업자 50여명이 투입됐다.

현장 관계자는 건물 크기가 큰 만큼 완전한 철거에는 1∼2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건물 반경 500m 지점부터 2단계 안전선을 설치해 접근을 막았지만, 인근 주민 30여명은 매일 같은 자리를 지키던 건물의 철거를 직접 지켜보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탈리아 대리석 수입 공장을 운영하는 대만인 천모(73)씨는 이번 지진으로 대리석이 여럿 파손돼 최소 3억 대만달러(약 126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톈왕싱 빌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여진이 멎으면 더 자세한 상황을 체크해봐야겠지만 피해가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라며 "화롄으로 이사 온 지 10년이 됐는데 이런 재난은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40대 황모씨는 "지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벌어지니 집안이 흔들리고 집기가 쓰러져 올해 68세인 어머니가 너무 놀랐다"고 지난 3일 아침을 떠올렸다.

한 50대 여성은 "그나마 밤이 아닌 아침 출근 시간대에 지진이 발생해 피해가 적었던 것 같다"며 안도하기도 했다.

이번 대만 지진에 대한 해외의 관심을 보여주듯 톈왕싱 건물 주변으로는 각국 언론은 물론 중국중앙TV(CCTV) 등에서 온 취재진 90여명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대만 중앙재해대응센터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누적 사망자 수는 12명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는 총 1천106명, 고립된 사람은 682명, 실종자는 16명으로 각각 파악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