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 사이에선 '회의적' 분위기…박단 위원장 '탄핵' 언급도
"2천명 전면 백지화" 요구 굽히지 않아…교수들 헌법소원도 예고
주요병원들, 경영난 악화…환자들 "아픈데 봐줄 사람 없어 서러워"
대통령-전공의 만남 후폭풍…"그래도 대화해야" vs "백지화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 단체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화 이후 의료계 안팎에서 후폭풍이 일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자평했고, 의료계에서는 대화 자체에 의미가 있다면서도, 결과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전공의들은 박 위원장이 굳이 총선을 앞둔 이 시점에 왜 대통령과의 만남을 강행했느냐는 불만을 표출한다.

박 위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의대 증원 2천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극한 대치를 종결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대통령-전공의 만남 후폭풍…"그래도 대화해야" vs "백지화부터"
◇ 정부 "대화 물꼬 텄다"…전공의들 "박 위원장이 전공의 '패싱'"
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두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당장 정부와 전공의들의 온도 차가 뚜렷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면담을 언급하며 "정부는 전공의와 이제 막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전공의들은 동의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히려 이번 만남이 전공의들 내부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도 엿보인다.

적지 않은 전공의들은 박 위원장이 대통령과의 대화를 약 2시간 앞두고 대전협에 공지했고, 이후에도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현 상황에서 대통령과의 대화가 필요했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사직한 전공의 A씨는 "처음부터 전공의 전체 의견을 '패싱'하고 대통령을 만나러 간 게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전공의들 사이에선 박 위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는 성명서마저 돌고 있다.

신상을 밝히지 않은 전공의는 성명서에서 "(대통령과의 만남은) 대전협 비대위 내에서만 상의 됐을 뿐, 나머지 병원 대표들과는 사전에 총회나 투표 등의 방식으로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면담 이후 어떤 회의 내용도 전공의들에게 공지하지 않고 비밀에 부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명서 작성자는 박 위원장 탄핵에 동의하는 의견을 모아 대전협에 탄핵안을 발의할 방침이다.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인마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면서 박 위원장이 수세에 몰리는 듯했지만, 박 위원장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최근 사태에서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을 맡았던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은 SNS에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일 때나 자연인으로 돌아온 지금이나 대전협 비대위와 박단 위원장의 행보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성원을 보낸다"고 밝혔다.

대통령-전공의 만남 후폭풍…"그래도 대화해야" vs "백지화부터"
◇ '원점 재논의' 없이는 대화 진전 어려워…"그래도 대화해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정부와 달리, 많은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2천명에 대한 '원점 재논의'가 없으면 더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현재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등 기존에 요구한 7대 선결 조건이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공의 7대 요구안은 ▲ 의대 증원 계획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 ▲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대상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이다.

이 때문에 의대 교수 등은 정부가 의대 증원 2천명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교착 상태에 빠진 의·정 대화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수련병원 교수는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원점 재논의'가 되느냐 여부"라며 "이게 해결되지 않는 한 전공의들의 복귀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전공의들의 요구를 충분히 검토하겠지만, 의료개혁의 원칙만은 흔들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총리는 이날 "정부의 개혁 의지는 확고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역시 "정부는 유연하고 포용적이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의료개혁을 추진해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의·정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 교수 C씨는 "지금 같은 상황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며 "그래도 대화는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대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박 차관은 "의료계에서는 대화를 추진하고자 하는 분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자제해주시기를 바란다"며 "대화는 공감을 넓혀 가는 것이고, 그러다 문제 해결의 발단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 장관께서도 얼마든지 전공의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다"며 "합리적인 생각들을 가지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다음 주 초 헌법재판소에 정부가 의대 2천명을 증원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낼 예정이다.

대통령-전공의 만남 후폭풍…"그래도 대화해야" vs "백지화부터"
◇ 의정 갈등 속 환자 피해 이어져…"아픈데 봐줄 사람 없어 서럽다"
의정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현장의 어려움은 지속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한 2월 마지막 2주부터 지난달까지 수련병원 50곳의 전체 수입액은 2조2천40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6천645억원 대비 약 4천238억3천만원(15.9%) 줄었다.

병원당 평균 감소액은 84억8천만원가량이다.

전공의가 떠난 뒤 환자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기간 병원 50곳의 전체 병상 가동률(56.4%)은 지난해보다 18.8%포인트 내렸다.

실제 서울시내 주요 병원은 수술을 절반 가량, 외래를 20% 이상 줄이면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에서 힘겹게 버티는 중이다.

지방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충북대병원이 5일 외래 진료 축소에 들어갔고, 계명대 의과대학 동산병원은 이달 둘째 주부터 토요일 진료를 전면 중단한다.

이날 충북대병원에 안과 진료를 받으러 온 60대 이모 씨는 "헛걸음했다"며 "의료 개혁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픈데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괜히 서럽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전날 오후 6시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의 총 상담수는 37건으로, 이 중 피해신고가 접수된 건 5건이다.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4일까지 누적 상담 수는 2천135건이고, 이 중 623건은 피해신고서가 접수된 사례다.

피해신고 중에서는 수술 지연이 417건으로 가장 많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