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서 병원 3곳 이송 거부당한 70대 숨져…병원 경영난도 심화
'응급실 뺑뺑이 막자'…병원·지자체 핫라인 구축 등 안간힘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과 '주 52시간 근무'를 예고했던 대학병원 교수 일부가 최근 격무를 호소하며 외래 진료 축소 등에 나서고 있다.

4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아직 상당수의 교수가 의료 현장을 지키며 전공의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곳곳에서는 필수 의료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생기고 병원의 경영난이 심화하는 등 혼선이 지속하는 모습이다.

일부 병원은 '응급실 수용 거부' 사고를 막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핫라인을 구축하고 응급실 '순환 당직제'를 검토하는 등 대안을 고심하고 있다.

의료진 격무에 병원 외래진료 연기 속출…커지는 환자 불편(종합)
◇ 곳곳에서 외래 진료 축소…교수들 "체력 고갈 심각"
충북대 병원 교수들은 오는 5일부터 전공의 이탈 사태 이후 처음으로 외래 진료 축소에 들어간다.

이에 대해 앞서 충북대 병원·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의료진의 고갈된 체력을 보충하고 소진으로 인한 의료 사고를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며 "5일부터 매주 금요일 개별적으로 외래 진료를 축소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비대위에 따르면 오는 5일부터 이 병원의 외래 진료는 평상시보다 75% 줄어든다.

병원 측은 진료가 예정돼 있던 환자들에게 사전에 연락해 일정이 연기됐다고 안내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남대 의대·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비대위는 최근 '주 40시간 진료' 및 신규 외래 예약 축소 등 방침을 전체 진료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비대위는 교수들의 신체적·정신적인 건강 상태를 평가한 뒤 진료 축소 방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방침이다.

전북대 병원 교수들도 근무 시간을 법정 근무 시간인 주 52시간으로 줄이고 외래 진료를 최소화하고 있다.

성남 분당서울대병원에서도 소속 다수 교수가 외래 진료 일정을 뒤로 연기해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남 진주경상국립대 병원은 응급 중증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진료과별 특성에 맞춰 외래 진료를 축소하고 진료 시간 등을 조율하고 있다.

다만, 다수의 병원에서는 앞서 집단 사직 및 '주 52시간 근무'를 예고한 교수들 대부분이 여전히 기존의 근무 시간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인턴들이 상반기 신규 임용을 포기하는 등 의료 공백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교수들의 근무 시간을 크게 줄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수원 아주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 또한 교수들에게 법정 근로 시간인 주 52시간에 맞춰 근무할 것을 권고하고는 있으나, 구체적인 축소 근로 방안을 정해 집단행동에 나서기는 다소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관계자도 "교수들이 많이 지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비상경영체제에 들어선 병원 사정을 아는 교수들이 52시간 근무나 외래진료 축소를 선도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지역 의료계 관계자도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수술 건수나 병상 가동률 등의 절대적 수치는 줄었지만, 현장에서 격무는 이어지고 있다"면서 "주 52시간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는 나오지만, 여러 달 전부터 수술이나 진료를 예약한 환자들이 있어 현실적으로 시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료진 격무에 병원 외래진료 연기 속출…커지는 환자 불편(종합)
◇ 70대 부상자 이송 거부 끝 사망…수술실·병상 가동률 '뚝'
의료 현장의 혼선이 계속되는 가운데 충북 충주에서는 넘어진 전신주에 깔린 70대가 병원 3곳으로부터 이송을 거부당한 끝에 결국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4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오후 5시 11분께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한 주민이 몰던 트랙터에 들이받힌 전신주가 넘어지며 70대 A씨를 덮쳤다.

구급대는 건국대 충주병원과 충주의료원으로 이송을 시도했으나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요청이 거부돼 그는 시내 모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받았다.

하지만 이 병원도 외과 의료진이 부족해 추가 수술을 할 수 없었고, 원주 연대 세브란스기독병원 또한 수술 환자가 대기 중이라는 이유로 전원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A씨는 이튿날 오전 1시 50분께 약 100㎞ 떨어진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고 9시간여 만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

다른 지역의 주요 병원도 수술실과 입원 병상 가동률이 크게 줄어들면서 환자들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충북대병원의 경우 전체 의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전공의 148명이 근무를 이탈한 가운데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평소에 비해 약 50%, 병상 가동률은 40%대로 뚝 떨어졌다.

경남 진주경상국립대 병원은 병상 가동률이 평소보다 21% 감소했고, 수술 건수도 17% 줄었다.

경남 소재 상급종합병원인 삼성창원병원은 현재 입원 환자 수가 감소해 1개 병동을 탄력적으로 통합 운영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도 지난달 중순부터 일부 병동을 축소 운영 중이며, 인천 상급종합병원 3곳 또한 전공의 집단 이탈 초기 80%대였던 병상 가동률이 57%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주대병원은 2월 말부터 수술실을 12개에서 8개로 줄이고 내과 중환자실 입원 병상을 20개에서 8개로 축소해 운영 중이다.

환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각 병원의 경영난도 심화하는 상황이다.

전북대병원은 지난달부터 간호사 등 병원 일부 직원이 무급휴가에 들어갔고, 인건비 등을 감당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고 있다.

병상은 파업 전의 70%만 운영 중이고, 전체 수술실 21개 중 7∼8개만 돌아가는 것으로 파악됐다.

병원 측은 의료계 집단행동 이후 매일 수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대병원은 이번 사태로 일일 수익이 3억여원 감소했고, 이달부터는 매월 90억여원의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며 비상 경영에 들어간 상태이다.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의 경우 비용 절감을 위해 홍보·광고 비용을 줄이고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태에 대처하고 있다.

의료진 격무에 병원 외래진료 연기 속출…커지는 환자 불편(종합)
◇ '응급실 뺑뺑이' 없도록…병원·지자체 대책 고심
의료진 부족 사태가 계속되자 광주의 상급종합병원들은 광주시와 핫라인을 구축해 '응급실 수용 거부' 사고를 예방하기로 했다.

광주시는 전날 전남대병원, 조선대병원, 광주기독병원 측과 의료 공백 최소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3개 병원은 특정 질환 응급환자를 당직 병원이 맡아주고, 다른 병원은 담당 의료진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방식의 '응급실 순환 당직제' 도입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병원별로 대응할 수 있는 진료·수술과 시설 수준이 달라 당장 시행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병원 간 협의를 강화해 비상 진료로 인한 환자 치료 거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이달 중 보건복지부가 응급실 순환 당직제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줄 경우 따르겠다는 방침이다.

대구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최근 복지부, 대구시, 의료인 등이 관련 회의를 한걸로 안다"며 "회의에서 각 병원이 요일별로 27개 응급질환 당직 업무 등을 분담하는 방안이 언급됐으나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대구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순환 당직제를 시행하더라도 지역 내 의료 역량의 총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회의감을 드러냈다.

(박철홍 정경재 박주영 김근주 백나용 윤관식 이성민 박성제 강태현 정종호 신민재 김솔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