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신용대출에서 평가사가 은행·기업 측에 평가등급을 사전 제공하거나 관대한 평가 결과를 암시할 경우 허가 취소 및 영업정지 조치를 받게 된다. 병·의원이나 철물점 같은 비기술기업에게 암묵적으로 이뤄졌던 기술대출을 원천 차단한다

금융위원회는 3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기술금융 개선 방안 간담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기술금융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014년 도입된 기술금융은 기술력은 우수하지만 재무 상태나 신용등급 등이 떨어지는 창업·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제도다. 기술신용평가사가 발급한 평가서 등급에 따라 대출 한도와 금리 등을 우대한다. 기술금융 잔액은 작년 말 기준 304조5000억원으로 전체 중소기업 대출 잔액(1041조4000억원)의 29%에 달한다.

그러나 그간 기술금융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회사에 대해 관대한 등급을 주거나 기술평가 대상이 아닌 미용실이나 철물점 등 생활밀접업종에 대해서도 평가 보고서가 발급되는 등 허술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이 최근 기술금융 관련 검사를 진행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금융위는 기술 평가 시 필수 사항을 마련하는 등 기술신용평가를 내실화하기로 했다. 먼저 평가사에는 기업·기술에 대한 현지 조사를 의무화한다. 인력·자원 부족을 이유로 관행이 된 비대면 평가를 금지한 것이다. 평가 등급 근거를 확인할 수 있는 세부 평가 의견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엄격한 평가를 위해 기술평가의 등급 판정 기준을 강화하고 기술평가 가이던스도 도입하기로 했다.

평가사가 평가등급을 사전에 제공하거나 관대한 평가 결과를 암시하는 등 기술금융 제도의 신뢰성을 저해하는 중대 위법행위를 할 경우 허가 취소나 영업정지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신용정보법에 근거를 마련한다. 현행 법에는 기술신용평가사가 업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경우 불이익 처분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기술평가를 의뢰하는 은행도 평가사에 미리 등급을 문의하거나 관대한 등급을 요청할 수 없도록 신용정보법에 근거를 둔다. 은행은 기술금융 의뢰 물량을 배정할 때 신용정보원이 제공하는 품질심사평가 결과를 반영해야 하며, 물량 배정 기준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현재 기술금융평가사는 6곳이 있는데, 일부 은행은 관행적으로 수수료를 적게 받는 평가사에 물량을 몰아주기도 했다. 이는 평가 수수료가 줄어들고 평가서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금융위는 분석했다. 2014년 건당 평균 84만원이었던 수수료가 2022년에는 15만원으로 떨어졌다. 앞으로는 은행이 의뢰 물량을 배정하는 기준에서 수수료는 빼야 하며, 이런 평가 기준을 평가사에 사전에 제공해야 한다.

기술기업이 기술금융 혜택을 체감할 수 있도록 우대금리를 명확화하는 것도 이번 개선안의 주요 내용이다. 기술기업이 등급별로 어느 정도 금리 인하 혜택을 받았는지 알 수 있도록 은행들은 기술신용대출이 아닌 경우의 금리와 우대금리, 실행금리 등을 구분해야 한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