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월간 수출액이 110억달러를 넘어서며 2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3월 수출입 동향 자료를 보면 반도체 수출은 116억7000만달러로, 2022년 6월(123억달러) 이후 가장 많았다. 상승 흐름도 좋다.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연속 플러스 추세다.

PC·모바일 재고 감소와 더불어 인공지능(AI) 시장 공급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는 등 전방 수요가 견조한 회복세를 보인 데 따른 것이다. 특히 AI 서버용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점이 수익성 향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체 시황 개선은 ‘반도체의 봄’을 넘어 과거 스마트폰 보급이나 디지털 대전환 때 나타난 ‘슈퍼 사이클’ 재현 기대마저 낳고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올 상반기 수출이 전년 대비 최대 150% 급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도체가 국가 경제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로선 다행이긴 하나, 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반도체 패권을 놓고 국가 대항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각국이 보조금과 정책 지원을 통해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서는 모습은 가히 총력전 태세다.

반도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라곤 투자세액공제뿐인 우리는 이제서야 세계적인 보조금 전쟁 참전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나 반도체특별법 제정 당시 거대 야당이 번번이 ‘대기업 특혜’ 프레임으로 발목을 잡은 경험을 감안하면 실현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네덜란드 정부는 세계 반도체업계의 ‘슈퍼을(乙)’로 통하는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업체 ASML이 본사 이전 가능성을 꺼내자 25억유로, 우리 돈 3조6000억원을 들여 전력, 주택, 인력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사수 작전’에 나섰다. 네덜란드 정부가 제시한 당근책이 바로 ‘특혜’다. 국가 생존을 걸고 전개되는 반도체 전쟁은 특혜 시비가 끼어들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