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오징어게임이 '한국적이라서 성공했다'고? [서평]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K팝과 한식, 드라마와 영화 등 한국산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할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분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으로 꼽히는 ‘치킨’은 미국의 딥 프라이드 치킨이 원조다. ‘오징어게임’ 역시 딱지치기와 달고나 게임 등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요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주제는 가계부채와 가족애 등으로 세계 보편적이고, 영상 곳곳에는 서양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시각적 요소가 등장한다. ‘기생충’ 역시 빈부격차라는 보편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한국적 요소가 강한 것만이 성공의 비결은 아니란 얘기다.

‘혼종’.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인 문소영 기자는 최근 펴낸 <혼종의 나라>에서 최근 한국 대중 문화의 성공 비결이자 특징을 이 단어 하나로 요약한다. 여기서 혼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보다는 긍정에 가깝다. 한국처럼 자국과 외국, 전통과 현대 등 여러 가지가 정신없이 뒤섞인 ‘혼종적 환경’에서는 무엇이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과 같은 인기 콘텐츠들도 이런 환경의 산물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예컨대 기생충은 빈부격차와 황금만능주의를 ‘언덕 위 자택-반지하-지하 벙커’라는 공간적 상징과 블랙 유머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한국의 특수성’을 강조했다기보다는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주제를 남들보다 더 세련되게 풀어낸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와 줄다리기 역시 비슷한 게임이 다른 나라에도 존재해 오히려 친숙한 재미를 느낀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오징어게임의 성공은 가장 한국적인 놀이를 소개해서가 아니라,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정교하게 잘 배합해서 전 세계 대중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얘기다.

책은 혼종이라는 현상 인식에서 출발해 최근 몇 년 새 한국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해 나간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대표되는 ‘회귀·빙의·환생물’이 대중문화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 방탄소년단(BTS) 등 K팝 아이돌 그룹이 전세계적인 스타가 된 배경, 수십년 전만 해도 ‘백자대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달항아리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된 이유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의 ‘혼종적 성격’이 만들어낸 부정적 현상도 비중 있게 다룬다. 유명 유튜버 송모씨의 사례를 통해 ‘노력으로 이뤄낸 성공보다 타고난 부를 숭상하는 현상’을, 강남에 있는 손목 모양의 강남스타일 동상을 통해서는 ‘아직도 권위에 집착하는 관과 단체의 습성’을 짚는 식이다.

한국 사회문화를 한 단어로 규정하고 해석해 나간다는 콘셉트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의 깊은 식견이 책을 차별화한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학사·석사, 홍익대에서 예술학 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문화학 석사를 받으며 경제와 예술을 깊게 판 덕분이다. 풀어내는 솜씨도 각별하다. 무게감 있는 주제지만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 특유의 글솜씨 덕분에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전통적인 중노년층의 시각과 저자가 속한 X세대를 거쳐 MZ세대까지 아우르는 다채로운 시각을 책 하나에 담은 건 다른 어떤 책에도 기대하기 어려운 강점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