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부터 불기소 사건기록 안 보내…사무규칙 개정에 논쟁 표면화
법조계 "구체적 사건 따라 싸움 커질 수도…입법 미비 해소 시급"
입법 미비에 공수처·검찰 3년째 신경전…이종섭 사건 등 불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불기소 결정한 사건의 기록을 검찰에 보내지 않기로 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수처 출범 직후부터 제기됐던 쟁점이지만, 3년 넘게 입법 미비가 방치된 사이에 기관 간 감정적인 골만 깊어지는 모양새다.

본질적으로는 공수처의 기소권·불기소권과 연결된 사안인 만큼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나 감사원 유병호 감사위원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구체적 사건을 처리하는 시점이 되면 충돌이 커질 수 있어 시급히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2021년 출범 직후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불기소 사건의 기록을 대부분 검찰에 송부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이 문제를 두고 안팎에서 논란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공수처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2021년부터 검찰·공수처·경찰 협의체에서 논쟁이 벌어졌던 쟁점"이라며 "결국 공수처 지휘부에서 사건 기록을 보내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공수처 내부에서도 일부는 기록을 송부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지휘부가 보내지 않기로 결정해 실무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이달 19일 공수처가 내부 사건사무규칙을 개정해 송규 규정을 삭제한 것을 계기로 논쟁은 수면 위로 재부상했다.

검찰은 공수처의 불기소 결정이 타당했는지 검증·통제할 방법이 사라지고, 기소할 수 없는 범죄에까지 불기소 처분권을 인정하는 것이 형사사법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을 보내면 검찰도 다시 검토하게 되고 당사자도 항고, 재항고, 재정신청 단계로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데 보내지 않으면 법원에 대한 재정신청이 유일한 불복 방법이 된다"고 말했다.

공수처가 기소권 없는 범죄를 몇 건 수사했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 방법이 없어 '깜깜이'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공수처 내부적으로도 사건 처리 현황은 별도로 집계·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공수처는 원래 불기소 사건의 기록을 송부할 의무가 없고, 공수처법 규정과 헌법재판소 및 법원 판례에 따라 실질에 맞게 규정을 정비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공수처는 공수처법 제27조에 따라 모든 수사 대상 범죄에 대한 불기소 결정권을 가지며, 법원도 불기소 결정이 적법하다는 것을 전제로 재정신청을 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 출신의 다른 변호사는 "지방검찰청·고등검찰청·대검찰청 등으로 심급이 나뉘는 검찰과 달리 하나뿐인 공수처에 항고·재항고 제도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민원인이 공수처 검사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면 법원에 재정 신청을 하면 되기 때문에 항고권을 박탈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두 기관이 아전인수격으로 명확하지 않은 법률을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웅석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공수처는 모든 사건에 대해 검사의 지위·권한을 갖는다고 보고 불기소 사건은 보내지 않는다는 내용을 규정에 넣은 것이고, 공수처가 기소권 없는 사건에서는 특별사법경찰로 봐야 한다는 쪽은 모든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소권 없는 사건에서 공수처 검사의 역할이라는 본질적 쟁점이 입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더 큰 갈등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금은 '입장 차이가 있다' 정도이지만, 구체적인 사건을 공수처가 불기소했는데 검찰이 기소하고 싶어 하면 싸움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수처 사건의 상당수는 기소권이 없는 '비(非) 법조' 고위 공직자 사건인 만큼 유사한 갈등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입법 미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섭 전 대사의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유병호 감사위원의 국민권익위원회 표적 감사 의혹 모두 이런 사건에 해당한다.

'예고편' 격의 혼선은 이미 발생했다.

공수처는 감사원 3급 간부의 뇌물 혐의를 수사한 뒤 지난해 11월 검찰에 공소 제기를 요구했는데, 검찰은 올해 1월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며 돌려보냈다.

공수처가 반송 접수를 거부해 현재 이도 저도 아닌 채로 검찰이 사건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전 대사나 유 감사위원 등의 사건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경우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