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과일가게 박주현·김지연 부부, 건물 사이에 20m 통학로 내
통학로 벽에 학생들 감사 편지 '가득'…"안전한 길 더 많기를"
[#나눔동행] 임대수익 포기하고 상가 뚫어 '안전 통학로' 만든 건물주
"임대료 그거 조금 못 받으면 어때요.

아이들이 안전한 게 먼저죠."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에는 일반 상가에서는 볼수 없는 꽤 특이한 구조의 상가 건물이 하나 있다.

나란히 자리 잡은 과일 가게 사이로 사람 여럿이 함께 지나갈 수 있는 너비의 길이 나 있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벽마다 연필심을 꼭꼭 눌러쓴 손 편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여럿이 정성스레 쓴 편지들은 하나 같이 이 길을 낸 건물주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일가게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돈보다 학생들을 생각해주신 마음씨가 너무 따뜻하신 것 같아요', '우리 인후초등학교 학생들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통학로로 학교에 갑니다' 등의 글귀가 빼곡하다.

다른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은 '마음씨 좋은 사장님 덕분에 학생들이 너무 행복하겠네요.

인후초등학교 친구들이 부럽습니다'라고 적었다.

[#나눔동행] 임대수익 포기하고 상가 뚫어 '안전 통학로' 만든 건물주
상가를 가로지르는 신기한 통학로는 약 10년 전에 생겼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박주현(55)·김지연(51) 부부는 주차장으로 쓰이던 초등학교 앞 공터에 단층 짜리 상가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 이들 부부는 등·하교 때마다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학생들이 공사장 주변에 세운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비집고 들어와 학교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부부의 상가가 학교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탓에 학생들은 먼 길을 돌아가는 대신 위험한 공사장 지름길을 통학로로 택했다.

박씨는 순간 '아, 이래서는 아이들이 위험해서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부부는 고민 끝에 건물 중앙을 뚫어 아파트와 학교를 연결하는 길을 만들었다.

당연히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약 30평(99㎡)에 달하는 통학로(20m)를 만들지 않았다면 창고를 짓거나 세를 놔 임대료로 매달 100만원은 족히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씨 넓은 부부는 '돈'보다는 '아이들의 안전'을 선택했다.

이후로 인후초교 학생들은 편지에 적힌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통학로'를 선물 받았다.

박씨는 아예 통로 입구에 '인후초등학교 가는 길'이라는 푯말까지 만들어 붙여놓았다.

[#나눔동행] 임대수익 포기하고 상가 뚫어 '안전 통학로' 만든 건물주
건물 사이 통학로 덕분에 학생들은 비나 눈이 올 때도 우산 걱정 없이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부부는 안전하게 학교에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길 만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부부의 과일가게가 생긴 지 어느덧 10년이 넘으면서 이 통학로도 덩달아 주변의 명물이 됐다.

한번은 경찰관이 '왜 인후초등학교 주변은 사고가 안 날까?'라는 호기심에 찾아왔다가 이 길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기도 했다.

서거석 전북교육감은 지난해 4월 학생들을 배려한 부부에게 감사장을 수여했다.

감사장에는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소유한 건물 내에 통학로를 만들고 관리해 주신 데 감사드린다'는 문구가 적혔다.

부부는 매일 마주치는 학생들을 위해 때때로 초등학교에 과일을 선물하고 있다.

과일값이 많이 올랐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꾸준히 나눔을 이어가고 있다.

박씨는 "이렇게까지 칭찬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많은 분이 볼 때마다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아이들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길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나눔동행] 임대수익 포기하고 상가 뚫어 '안전 통학로' 만든 건물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