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급실 지키는 간호사…거리로 나온 의사 > 전공의 집단사직 후 맞은 첫 휴일인 25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실 병상이 비어 있다. 한 간호사가 의료 현장에서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응급실 지키는 간호사…거리로 나온 의사 > 전공의 집단사직 후 맞은 첫 휴일인 25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응급실 병상이 비어 있다. 한 간호사가 의료 현장에서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안’을 둘러싼 첨예한 입장차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환자 곁을 지키겠다며 중재에 나선 의대 교수들이 ‘증원 규모 축소’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재차 ‘2000명은 최소한의 인원’이라고 강조하면서다. 일부 대학병원 교수까지 의료 현장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며 불거진 극한 대치 상황은 잇단 물밑 협상으로 다소 누그러졌다는 평가다.

대통령실 “2000명은 최소 규모”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5일 브리핑에서 “기본적으로 의사 충원 필요에 따른 것은 3000명 안팎이지만 여러 여건을 고려해 (결정한 게) 2000명”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수요조사에서 대학들이 3000명에 육박하는 희망 증원 인원을 적어낸 만큼 내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한 기존 방침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취지다.

그는 “30년간 한 번도 증원하지 못해 감소한 인원이 누적돼 7000명에 이른다”며 “17개 의대가 정원 50명 미만 소규모 의대이고, 이런 의대는 운영을 위해서도 인원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주장한 내용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의사, 환자, 보호자, 전문가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했다. 의료진이 호소한 어려움을 정책으로 반영한 데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해 11월까지 필수의료 강화에 9000억원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의대 증원을 두고 의사들이 환자 목숨을 볼모로 극단적 집단행동을 한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전공의 집단행동과 관련, 검·경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법무부는 법률 자문을 위해 보건복지부에 검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응급실 지키는 간호사…거리로 나온 의사> 이날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거리행진을 벌인 뒤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최혁 기자
<응급실 지키는 간호사…거리로 나온 의사> 이날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거리행진을 벌인 뒤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최혁 기자

중재 나선 교수들 “정원 조정돼야”

의대 교수들은 ‘정원 조정’이 사태의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김장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장(울산대 의대 교수)은 “정부가 2000명이라는 원칙만 고수한다면 대치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후 교수들까지 의료 현장을 떠나는 티핑포인트는 전공의 대상 처벌이 이뤄지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수사회에선 정원 확대 규모를 500명까지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했다.

지난 주말을 ‘골든타임’으로 명시하면서 강경한 목소리를 전한 정진행 서울대 의대 교수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개인 명의 성명을 통해 “정부가 사태의 해결을 원하고 이성적 대화를 통해 최적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교수 사회 내부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그는 “1~2주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만나 해야 할 일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가벼운 형식으로 발표하자”고 정부에 요구하면서 “순수성에 대한 의심을 없애기 위해 본격적 협의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 시작하고 당장은 계획 정도만 합의해도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 정원 수리가 열쇠” 전망도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전국 대표자 확대회의를 열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한다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국립대 의대 교수들이 당장 병원 겸직을 해제해 진료 현장을 떠날 수 있다는 구체적 대응 방안까지 거론됐다.

교육부는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의 교육 여건을 고려해 당장 수용 가능한 의대 정원을 다음달 4일까지 제출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의료계 안팎에선 이 수치가 이번 사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각 대학에서 애초 제출한 것보다 적은 인원의 학생만 수용할 수 있다고 말을 바꾸면 정부가 이들 대학에 억지로 정원을 추가 배정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대학 총장들이 이전과 같거나 많은 수의 정원을 제출하면 의대 교수들은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들이 가능하다고 밝혔기 때문에 ‘교육 여건상 어렵다’는 명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아서다.

지난해 11월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40개 의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151~2847명 더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학본부의 정원 수요와 달리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지난달 “350명 정도 확대하는 게 적절하다”고 발표했다.

이지현/양길성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