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ELS 판매 중단만이 능사 아니다
역대 최악의 주가연계증권(ELS) 참사다. 지난달에만 홍콩 H지수 연계 ELS에서 45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3년 만에 원금은 반토막 났다. 올해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의 ELS가 만기를 맞는다.

이번 ELS 사태를 보면서 10여 년 전 ‘눈물의 베트남펀드’가 떠올랐다. 2006~2007년 국내 증권사들은 베트남이 ‘신 엘도라도’라며 1조원 넘는 베트남펀드를 팔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5년 폐쇄형이어서 중간에 펀드를 팔고 나올 수 없었다. 당시에도 불완전판매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에도 상황이 비슷하다. 은행 ELS 투자자 10명 중 3명은 65세 이상 고령이다. 복잡한 파생상품 구조를 이해하기 힘든 투자자들이다. 더구나 10명 중 1명은 ELS에 처음 가입했다. 투자자들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더니…”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8일부터 12개 주요 판매사를 상대로 현장검사를 하고 있다. 신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민원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농협·하나·국민·신한은행이 차례로 ELS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최근 금융당국과 은행의 대응은 불완전판매 피해자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금이 반토막 난 대다수 투자자는 나 몰라라 한다. 2011년 6월 한국투자증권은 베트남펀드의 만기가 다가오자 판매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펀드를 개방형으로 바꿨다. 고객 의사에 따라 바로 찾아갈 수도 있고 그대로 맡길 수 있도록 했다. 2011년 23.4% 급락한 베트남 VN30지수는 2012년 24.9%, 2013년 15.8% 각각 상승했다. 원금엔 턱없이 못 미쳤지만 손실을 조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었다.

홍콩 H지수가 앞으로 더 빠질지 오를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중국 경제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 디플레이션 우려 등 삼중고에 빠졌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2%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을 제외하면 33년 만의 최저였다. 올해 GDP 증가율은 이보다 더 낮은 4.6%(국제통화기금)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 자금마저 속속 빠져나가면서 증시 수급 상황도 꼬였다.

반면 최근 들어 변화한 모습도 감지된다. 중국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위안(약 372조원)의 증시안정화기금을 조성했다. 인민은행은 오는 5일부터 금융회사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6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음달 열리는 중국 양회에서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무엇보다 지난달 10%가량 급락해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최근 10년 사이 바닥권인 6.1배로 낮아졌다. 추세 전환까지는 아니어도 기술적 반등 가능성은 열려 있다. 물론 바닥을 깨고 ‘지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중국 증시 전망을 차치하더라도 은행은 ELS 피해자들에게 시장에 머물 기회는 제공해야 한다. 판매보수를 받았으면 사후 관리는 기본이다. H지수 ETF를 편입한 신탁상품을 만들어 원하면 갈아탈 수 있게 하면 된다. 1%가량 신탁보수는 포기하는 게 당연하다. 특정 고객만 대상으로 혜택을 주면 안 된다는 자본시장법 조항이 꺼림칙하면 일정 기간 일반인도 가입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일부 투자자가 지난달 30일 수천 장의 탄원서를 들고 국회로 달려갔다. 하지만 투자자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은행과 당국은 조용히 속을 끓이는 다수 투자자를 위한 대응책도 고민해야 한다. ELS 판매 중단만이 능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