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 반도체산업이 직면한 기회와 위기
한국 반도체산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이 일본 반도체산업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반사이익을 얻은 덕이 컸다. 1980년대부터 제조는 물론 장비와 소재까지 완성된 생태계를 구축했던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1985년 플라자합의(엔화 가치 대폭 절상)와 1986년 반도체 협정(일본산 반도체의 점유율 제한)을 계기로 급격히 위축됐다.

일본 반도체산업의 위축은 한국 반도체산업에 다가온 첫 번째 기회 요인이었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20년 남짓 한국 반도체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제조를 중심으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정부는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소재, 장비, 기술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2018년부터 반도체 분야를 포함한 첨단산업 전반에서 강력하게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했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였다. 여러 제조업 분야와 디스플레이산업처럼 반도체산업도 중국의 빠른 성장과 추월이 예상되던 시기였기에 미국의 대중 견제는 우리 반도체산업에 두 번째 기회 요인이 됐다. 그러나 대중국 견제는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과 일본이 자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을 보완하고자 강력한 산업정책을 펼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4년 이후 다시 한국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와 그에 따른 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부문은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파운드리 분야 수요 급증으로 대만 TSMC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 대만에서 불과 3주 전 총통과 입법위원 선거가 있었다. 결과로 보면 친미 성향의 민진당 후보가 총통으로 선출됐지만, 입법위원 선거 결과는 야당인 국민당이 한 석 많은 다수당이 됐다. 혹자는 이런 결과를 보고 적절한 균형의 민심이 반영됐다고 한다. 다른 편에서는 대만 시민의 정서가 양분돼 사회적 분열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이런 결과에 대해 미국 정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미국으로서는 친중 성향의 후보가 당선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고 친미 성향의 정서가 확산한 것으로 보기에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무력 통일이나 봉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대만 선거 결과가 반도체산업에 미칠 영향으로 좁혀서 보면, 미국 입장에선 대만이 대중국 제재의 위험 요인으로 인식될 수 있다. 전쟁이나 봉쇄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더라도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은 그에 대해 대비하게 만든다. 이는 TSMC에 의존하는 현재의 파운드리 공급시장에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반도체산업에 찾아온 세 번째 기회다. 실제 연초부터 로이터통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첨단 패키징을 내세워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단기간에 TSMC의 위험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기회 역시 위기의 측면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특정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구조를 벗어나겠다고 하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산업 클러스터를 확충하고 관련 산업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발표됐다. 다행이고 고무적인 일이다. 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정책을 돌이켜 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첫째, 삼성과 SK 위주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 생태계에서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및 첨단장비와 소재의 국산 개발까지 반도체산업 생태계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둘째, 반도체 관련 인력 양성은 관련 계약학과를 만들고 학과 정원을 늘리며 외국 우수인력을 유치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공계 학생을 모두 잠재적인 반도체 산업인력으로 보고 필요한 교육을 해야 하며, 국내외 고급 기술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충분한 인센티브가 정부의 재정 지원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인 수요에 의해 마련돼야 한다. 우수인력이 스스로 한국 반도체산업으로 모이도록 하는 시장환경 개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