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진 기자
아파트 당첨됐다고 신나서 계약할 때 옵션을 이것저것 모두 고르다 보면 거의 외제차 한두 대 값이 더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서 고민하게 되죠. '나 호구된 거 아니야?'. 그래서 지난해 1년 동안 분양한 전국의 모든 아파트를 조사해봤습니다. 여기서 84A 주택형이 있던 208개 단지의 분양가, 옵션비,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더한 실질 분양가는 얼마인지 집계해봤습니다. 옵션별로는 얼마가 적정가인지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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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제네시스 한 대 값 긁었다…호구 된 거 아냐?" [집코노미TV]
우선 요약을 해보죠. 이 표에서 평균보단 중위가격을 잘 봐주세요. 평균은 한두 곳의 단지가 확 깎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학교 다닐 때도 우리처럼 반 평균 내리는 친구 있었잖아요. 그런데 중위가격은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친구의 점수입니다. 극단값을 제외한 아주 보편적인 숫자라는 거예요.

이렇게 보니까 작년에 분양한 전국 아파트 84A 중위가는 5억4000만원입니다. 옵션은 6000만원 조금 안 되게 붙여서 실질 분양가 6억 살짝 넘는 게 보편적이었네요. 풀옵션이 가장 비쌌던 단지는 총총견문록에서 스쳐 지나갔던 용산호반써밋에이디션입니다. 1억4000만원이 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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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은 '그래도 용산이니까' 싶은데 2등이 더 무섭습니다. 의정부에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84A 기준 풀옵션이 1억 넘는 아파트는 지난해 14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파트 계약할 때 무조건 풀옵션으로 선택하는 건 아니잖아요. 시스템 에어컨까지만 놓기도 하고 혹은 발코니 확장까지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옵션들의 보편적인 가격이 얼마인지도 계산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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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중요한 건 발코니 확장비와 중문까지는 어떤 단지든 시공의 범위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어컨부터는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죠. 어떤 집은 4개를 달지만 어떤 집은 6개를 달기도 합니다. 가전기기도 제조사와 사양이 모두 다를 테고요. 가구와 마감재까지 따지자면 집집마다 천차만별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같은 편차와 개별성을 감안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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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발코니 확장비는 1700만원이 중위가격입니다. 흥부네 집 요만큼 넓혀주는 공사비가 이 정도는 드는 걸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싼 집은 40만원이었으니까요. 앞서 전국에서 옵션비가 가장 비싼 아파트였던 용산호반써밋에이디션의 발코니 확장비가 4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16억원을 넘는 분양가에 이미 확장 비용 상당 부분이 녹아 있었던 셈이죠. 확장비가 가장 비싼 집은 3800만원이었는데요. 똑같은 공사인데도 특정 지역에선 더 비싼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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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력을 예로 들어보죠. 해링턴은 이틀 만에 4개 단지가 분양했습니다. 먼저 다산파크는 확장비는 0원이었죠. 진사의 경우 2개 단지 모두 1600만원이었습니다. 1, 2블록으로 분양했으니 당연히 당연히 서로 맞춰야죠. 이어진 테크노폴리스에선 970만원이었습니다. 같은 건설사가 하루이틀 차이로 분양했는데 모두 다른 이유는 뭘까요.

그런데 한 주 뒤에 테크노폴리스에서 다른 단지가 또 분양을 합니다. 이 단지 확장비는 1070만원. 직전 효성과 비슷하죠. 이런 식으로 앞 단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책정하는 게 보편적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얘기죠. 보통 분양가를 많이 못 올리면 발코니 확장비를 높이는 편입니다. 한 집당 1000만원씩만 더 받아도 1000가구 아파트면 사업비 100억이 더 들어오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분양가 상한제가 걸리면 이것도 심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도시 아파트는 확장비가 1000만원 이하인 경우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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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중문은 옵션 중에 가장 규격화 돼 있습니다. 전국 어디든, 누가 짓든 가격이 거의 다 비슷해요. 에어컨도 전용 84㎡ 기준으로 가격이 대동소이한데 한두 개를 더 놓는다거나, 더 좋은 모델을 쓴다면 1000만원대를 넘어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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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기기도 편차가 큰데요. 어떤 아파트는 인덕션, 식기세척기만 옵션인데 어떤 아파트는 비스포크나 오브제 같은 프리미엄 가전기기가 옵션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파트 분양은 삼세페나 마찬가지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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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가 아파트 계약하고 돈을 낼 때는 분양대금 내는 계좌 따로, 옵션비 내는 계좌 따로입니다. 보통 공고문에 '옵션비는 여기여기로 따로 내세요'라고 적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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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찾아보면 그 건설사의 자회사 혹은 관계사입니다. 사실상 같은 회사란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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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들이 자기 땅에 자기가 건물 짓는 경우도 있지만 재개발·재건축처럼 남의 땅에 건물을 지어주고 돈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 이 아파트의 분양대금 수익은 누가 가져갑니까. 사업시행자인 흥부가 가져갑니다. 이 사업 대박나도 다 흥부 거예요. 놀부에겐 약속했던 공사비만 줍니다. 솔직히 놀부도 좀 아쉬울 거 아니에요. 그때 주머니를 조금 불릴 수 있는 게 옵션비예요. 옵션에서 나오는 이익은 시공자에게 어느 정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옵션비를 확 올려주는 건 어떤 품목일까요. 마감재, 거실특화, 욕실특화 같은 부분들이죠. 고급화를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언제는 우리집만 생겨도 좋다더니 이젠 거실에 최소 포세린타일은 깔아야 되고, 주방은 유럽산으로 도배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내가 내야 할 돈이 확 올라가요. 나도 모르는 사이 제네시스 한 대 긁은 거죠.
"나도 모르게 제네시스 한 대 값 긁었다…호구 된 거 아냐?" [집코노미TV]
그러니까 아파트 분양할 때 모델하우스에서 벤츠 경품으로 준다고 '이야~ 여기는 마케팅을 제대로 하네' 감탄하면 안 돼요. 그거 다 자기 돈입니다. 자기 차인데 남 주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오늘 이렇게 표현한다고 건설사들이 나쁜 일을 했다는 건 아닙니다. 수요자들이 그만큼 좋은 집을 원하는데 그렇다고 일괄 적용하자니 가격이 비싸지니까 점점 옵션이 세분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랜저도 최저가는 3700만원입니다. 트림을 올리고 옵션 다 더하면 5700만원까지 갈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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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현관 월패드 같은 건 옵션이 아니라 그냥 줘도 될 것 같습니다. 변기도 이젠 비데가 옵션이 아니라 기본 사양으로 들어가야죠. 분양가를 1000원 단위까지 계산하는 경우도 많은데, 몇 억짜리 집을 살 때 1000원 정도는 깎아줘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참고로 오늘 이 조사자료는 공익을 위해 집코노미 주민센터에 원본을 올려뒀습니다. 2023년 공고를 낸 아파트 단지들 중에서 전용 84㎡ 주택형을 가진 208개 단지를 조사했고, 여기서 A주택형의 최고 분양가+최고 옵션 기준 가격입니다. 당연히 오류가 존재할 수 있고 일부 항목은 단지별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합계치나 평균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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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진행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촬영 이재형·이문규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편집 이문규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