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금도 낼 줄 몰랐던 보육원 출신, 자립준비청년 희망이 되다
열여덟 살이 되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이다. 매년 약 2000명이 보육원, 그룹홈 등의 보호시설에서 나와 자립한다.

최근 몇 년간 자립준비청년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중앙·지방정부는 자립정착금, 자립수당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했다. 좋은 제도가 생겨나고 있지만, 당사자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신선 씨(31)는 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와 유튜브 채널 '열여덟 어른TV'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캠페이너다. 신 씨는 집 구하기, 돈 관리 등 하루아침에 어른이 된 후배들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쓸 만한 정보를 공유한다. 사회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당사자의 이야기도 함께 전하고 있다.

신 씨는 "시설 안에서 자립 교육을 충분히 받았는데 막상 자립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공과금 내기, 공인인증서 발급 등의 사소한 업무에서부터 막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부터 적은 돈이라도 계획적으로 쓸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씨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꽤 있다. 시설에서 퇴소한 청소년과 청년들을 불쌍하게만 보는 사회적인 편견이 없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씨는 "자립준비청년도 나름대로 저마다의 꿈을 꾸며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 후배들이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 썸네일.
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 썸네일.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자립준비청년 관련 캠페이너로 활동 중인 신선(31)입니다. 아홉 살 때부터 150명이 모인 보육원에서 생활하다가 대학 졸업 직전인 2016년 자립했습니다.

캠페인을 시작할 무렵인 2019년에는 사람들이 아직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보호종료아동 11명을 인터뷰해서 매체에 글을 기고했어요. 이후에는 미디어가 소위 '고아'인 자립준비청년을 재현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네이버 카페를 개설했고, 팟캐스트와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보육원 출신이어서 불쌍하고 도움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립준비청년도 나름대로 저마다의 꿈을 꾸며 멋지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있습니다.

▶보육원에서 나올 즈음에는 준비가 많이 된 상황이었나요?
정부가 지원해주는 자립정착금을 받고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지원 규모는 지자체별로 다른데 제가 자립할 때쯤에는 500만원이었습니다.

퇴소 전에 보육원 선생님 도움을 받아 LH 임대주택을 구해 놓은 상황이었어서 주거 문제도 미리 해결해놨었습니다. 보증금으로 100만원을 썼고, 150만원 정도를 들여 가구를 샀습니다. 나머지는 저축했습니다. 자립 초반에는 외로웠고,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고민에 빠져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일시금으로 큰돈을 받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갑자기 큰돈을 받으니까 떨렸습니다.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싶고 좋은 노트북 사고 싶었죠. 정착금을 한꺼번에 쉽게 쓰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비싼 명품을 사고, 친구들한테 한턱 쏘는 식으로 쓰는 걸 경계하려고 했습니다.
유튜브 채널 <열여덟 어른 TV>의 한 영상 속 장면.
유튜브 채널 <열여덟 어른 TV>의 한 영상 속 장면.
▶자립준비청년에게 또 어떤 지원이 있나요?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은 많이 개선됐어요. 자립정착금은 전국적으로 800만원으로 확대됐고요, 서울의 경우 지난해 말 1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확대했습니다. 1000만원을 우선 주고, 어떻게 썼는지 점검할 겸 1년 후에 나머지를 분리 지급해요.

2019년부터는 매달 청년의 계좌로 자립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도 생겼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인상되고 있습니다. 올해 기준 월 40만원이고 50만원으로 증액한 일부 지자체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이나 후원자가 월 5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10만원을 추가로 보태주는 ‘디딤씨앗통장’이라는 게 있습니다. 만 24세 이전에 해지하기 위해서는 만 18세에 적립이 끝납니다. 이후에는 결혼 취업 주거 고용 학습 이런 용도로만 해지해서 쓸 수 있습니다. 근데 많은 이들이 계좌에 있는 돈을 수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2022년 보건복지부 자료: 전국 대상자 4만 5217명이 적립 금액 1813억 9500만원을 찾아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남)

▶시설에서 퇴소하면 당장 지내야 할 새로운 집이 필요한데, 주거 지원 제도도 있나요?
자립준비청년은 청년전세임대 주택 신청 시 1순위여서 신청하면 웬만하면 다 공공주택에서 살 수 있습니다. 20세 이하 청년은 LH 이자를 전액 감면받고, 보호종료 5년 이내인 경우 절반가량 보전받아요.

하지만 과정이 너무 어렵죠. 자격 심사를 한달정도 기다리고 나서 부동산을 방문해 괜찮은 집을 찾아야 합니다. 지원 한도액은 수도권 1억2000만원, 광역시 9500원인데 LH 계약이 가능한 집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예요.

필사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하는데, 워낙 복잡하다 보니 그냥 포기하고 비싼 집에 들어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제 주변에서도 서울에서 월세 55만 원짜리 월세 집에 살던 친구가 있었어요.
왜 안 하냐 했더니 “복잡하고 어렵다”라고 말했어요.

▶자립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자립해서 마주한 가장 큰 어려움은 공과금 내는 거였어요. 도시가스, 수도세, 전기세 등 한 번도 내본 적이 없거든요. 인터넷 뱅킹을 하는 법도 몰랐어요.

처음으로 우편함에 꽂힌 고지서에는 각종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죠. 요금이 석 달째 체납됐다는 통지를 받기도 했어요. 끙끙 앓다가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쉽게 해결해주었어요. 친구는 “엄마가 고지서 내는 거 보고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어”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정에서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들이 있잖아요. 부모님 따라 친척들의 장례식, 결혼식에 가서 기본적인 예절을 배우는데, 저는 가본 적이 없으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축의금으로 4만원을 낸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짝수로 내면 안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돈 관리하는 방법을 교육받나요?
오히려 교육이 너무 많은데 대체로 형식적으로 진행됩니다. 막상 독립하고 나면 모르는 것 천지에요.

시설에서는 돈을 경영해볼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보육원에서는 각종 공과금 등 행정 업무를 보시는 선생님들이 있어요. 매달 용돈 3만원을 받았는데, 계획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있는 돈이 아니잖아요. 어릴 때부터 적은 돈이라도 계획적으로 써볼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인인증서 발급, 통장 개설 등의 업무도 시설 퇴소 전에 꼭 해봐야 해요.

▶자립준비청년 관련 캠페이너로서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나요?
자립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사소한 일들조차 제겐 너무 어려웠어요. 보육원에 있을 때는 선생님들께 바로바로 물어보곤 했는데, 자립한 뒤에는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조언해주고 도움을 줄 때 보람이 크죠.

한 청취자가 “팟캐스트 덕분에 자립 이후가 조금 기대가 된다”고 댓글을 달아줬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자립청년 당사자들이 댓글을 통해 궁금한 걸 물어보고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공간을 온오프라인에서 앞으로 더 확장하고 싶어요.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제도, 인식은 계속 나아지고는 있어요. 아직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있다면요?
자립이라는 게 나이가 찼다고 해서 준비되는 게 아니거든요. 팟캐스트, 유튜브 외에도 현재 국무총리실 소속 아동정책조정위원회에서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지속해서 하는 얘기가 경제적인 자립만이 '자립'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은 “15세부터 18세까지는 준비하는 단계”라고 선을 긋고, 일정 기간 안에 해내라고 하는 면이 있어요. 저는 자립이라는 게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가정이 있고 부모가 있어도 모르는 게 많고 독립해서도 힘든 게 많잖아요.

"돈 주고 집 줄게"로 끝나는 게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네트워크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공적인 영역에서는 전국 17개 시·도에 자립전담지원기관이란 게 설치돼 있어요. 보호가 종료되면 국가에서 5년동안 시설을 나온 청년들을 관리해요. 전담 인력이 고민을 들어주고 정보를 연결해줘요. 그런데 통계에 따르면 전담인력 1명이 약 70명의 청년을 담당하다 보니까,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가 없는 거예요. 전담 인력 충원이 잘 돼야 하고 앞으로 처우도 더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선 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자립준비청년들이 언제든지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존재로 남고 싶어요.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도 후배들이 선배들의 경험을 거름삼아 시행착오를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단체를 만들거나 대학원에서 연구하거나, 아직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당사자로서 계속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