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한때 경쟁적으로 발행하던 ‘지역화폐’가 힘을 잃고 있다. 국회의 도움을 바탕으로 국비가 일부 지원된 덕분에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찍을 수 있었는데, 국비 지원 규모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서다. 효과가 분명하지 않고 비용만 많이 드는 지역화폐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는 올해 지역화폐 지원에 총 3000억원을 배정했다. 정부는 당초 관련 예산을 ‘0원’으로 책정했으나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관리를 원한 국회의원들이 3000억원을 도로 살려놓았다. 살리긴 했지만 규모는 작년보다 15% 줄었다.

지자체들은 저마다 화폐 발행 규모와 할인율 축소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세수가 작년이나 재작년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지자체 예산으로 국비를 대체하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곳이 많다.
지역화폐 뿌리던 지자체, 발행 확 줄였다

기초지자체 곳곳 예산 줄여

경북 김천시는 올해 김천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700억원으로 줄여 운영한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해 발행액 1251억원에 비해 551억원(44%) 축소된 규모다. 시는 작년까지 10%로 유지하던 할인율을 6%로 낮췄다. 국비가 확보되지 않아 시비도 전년 89억원에서 33억원 줄어든 56억원으로 잡았다.

경기 고양시는 세수 감소, 열악한 재정 상태 등을 고려해 지역화폐 사업에 투입하는 시비를 작년 28억원에서 올해 전액 삭감했다. 상품권 구매 시 보전하던 7%의 인센티브도 잠정 중단했다. 충남 태안군은 월 50만원이던 1인당 구매 한도를 올해 30만원으로 줄였다.

충북 제천시는 이달부터 지역화폐 ‘제천모아’의 할인율을 10%에서 7%로 하향 조정했다. 시 예산도 35억원에서 25억원으로 10억원가량 감액했다. 시 관계자는 “국비 규모가 줄었고 예산 배분이 늦어지고 있는 데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상품권 할인율 7%→5%로

광역 지자체 상황도 여의찮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국비 지원 방향을 발표하면서 인구 감소지역과 일반 자치단체, 보통교부세 불교부단체(보통교부세를 받지 않는 지자체) 등 3개 유형으로 분류해 국비 보조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어서다.

재정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살림 규모가 큰 대부분 시·도들은 정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이 대표적이다. 서울은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지난해 1조671억원에서 8600억원으로 20% 가까이 축소할 계획이다. 할인율도 기존 7%에서 올해 처음으로 5%로 조정했다.

경상남도는 2021년부터 지역 소상공인이 참여하는 공공 온라인 쇼핑몰에서 쓸 수 있는 모바일상품권 ‘경남e지’를 올해부터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도 예산 44억원이 투입됐지만, 올해는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사업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에 교부하는 도 예산도 0원으로 편성됐다. 강원도는 올해 강원사랑상품권 예산을 지난해(48억4000만원)보다 12억4000만원 줄여 편성했다.

정부 “지역화폐는 지자체 사무”

행안부는 지역화폐 예산을 나눌 때 지역 상황을 반영해 분배 기준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에는 국비 지원 방향을 발표해 인구 감소지역의 경우 할인율을 10%로 유지하고, 일반 자치단체는 할인율을 7% 이상인 수준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며, 보통교부세를 받지 않는 지자체는 할인율을 ‘알아서’ 정하라고 한 바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처음으로 지역별로 할인율에 차등을 두고 보조하는 방안을 시도했다”며 “결과를 참고해 올해 예산 배분 기준을 만들고 다음달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해련/오유림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