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은 가상자산의 제도권 금융시장 진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그동안 가상자산에 회의적이던 투자자와 고위험을 우려한 기관투자가 자금이 들어오면서 올해만 최대 1000억달러(약 131조원), 중장기적으로 전 세계 ETF 자금의 3%가량인 3000억달러가 유입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 ETF 도입 후 금 투자 시장이 활성화한 것처럼 비트코인 ETF가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가상자산 시장의 성숙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높다. 다만, 이로 인해 시장이 들썩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비트코인이 개당 1억원을 넘어 2억원까지 도달할 것이란 예상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100일 앞으로 다가온 비트코인 반감기가 이를 견인할 것이란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새로운 불장(강세장) 진입 신호탄으로 보고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것은 금물이다.

미국의 이번 비트코인 ETF 승인에서 보듯 가상자산의 정규시장 진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세계 각국은 앞다퉈 제도화를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 암호자산통합법(MiCA)을 지난해 통과시켰다. 지난해 9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동 선언문에는 가상자산 정책·규정 관련 내용을 담기도 했다.

이처럼 각국이 가상자산을 제도권으로 포용하는 배경에는 암호화폐를 매개로 한 블록체인 기술 혁명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상자산을 사실상 사행성 투기 수단으로 여겨 제도권 편입을 뒷전으로 미뤄왔다. 이런 탓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ICO(코인 상장)가 전면 금지된 가운데 역외에서 발행된 정체불명의 김치코인이 판치는 ‘쓰레기 투기판’이 돼 버렸다. 지난해 6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투자자 보호와 피해 처벌에만 초점을 맞춘 게 현실이다.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만큼 관련 ETF 도입은 멀고 먼 일이다. 이러다간 국내 투자금이 미국으로 이탈해 자본시장을 위축시키고, 암호화폐를 매개로 한 블록체인 혁명에서 도태하고 말 것이다. 우리도 종합 디지털 자산 기본법 등 제도적 인프라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