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타협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올 들어 가동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기대를 키운다. 지난해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던 경사노위는 부대표자 주례 간담회를 통해 설 전까지 노동개혁 안건의 의제화를 확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경사노위의 특성을 감안할 때 논의 안건에 합의하고 일정만 정해도 절반은 성과를 낸 것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경영계와 노동계, 정부가 논의해 보자는 의제부터 다른 게 극한 대립의 현실이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총이 경사노위 복귀 의사를 밝힌 뒤 지난달 연장근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의미 있는 계기가 됐다. ‘1주 12시간’인 연장근로 한도 기준이 ‘1일 8시간 초과’가 아니라 ‘1주 40시간 초과’로 해야 한다는 너무도 상식적인 판단을 대법원이 내리면서 노동계가 입장을 바꿨다. 노동계는 그간 경사노위에서의 우선 논의 과제로 줄곧 산업안전과 정년연장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뒤늦게 바로잡힌 판례로 근로시간 개편이 불가피해지자 경사노위를 통해서라도 노동계 입장을 최대한 지키겠다는 전략으로 파악된다. 경위가 어떻든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복귀는 고무적이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동참을 거부한 데 따른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고용과 노동시장에 쌓인 개혁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연장근로 기준 정도가 아니라 근로 방식과 그에 따른 임금체계까지 유연성이 확보돼야 한다. 32개 업종으로 한정된 파견근로 제한도 시대 변화에 맞춰 확 풀어야 하고, 불법적 파업의 대항 수단인 대체인력 투입도 허용해야 한다. 굳이 법적 정년연장이 아니더라도 저출산·고령화에 맞춰 당사자 간 자율에 기반한 ‘계속 고용’도 필요하다. 성큼 다가선 AI 혁명 시대에 맞게 근로기준법부터 노사관계법까지 모두 정비해야 한다.

노동개혁은 정부 의지만으로는 어렵다. 갈등을 풀기는커녕 오히려 증폭하는 국회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한 번 경사노위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4에서 핑핑 돌아가는 AI 혁명을 보라. 고용의 계약 방식, 근로 형태와 임금 제도, 노사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 한국은 이 흐름에서 어떻게 되겠나. 올해는 노동개혁에 성과를 내야 한다. 노사 모두 더 실기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