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 올해 1115개 중국 업체가 참가했다. 미국(1201개) 다음으로 많다. 코로나19와 미·중 갈등으로 “중국이 사라졌다”는 말까지 나온 작년과는 딴판이다.

숫자와 규모도 엄청나지만 기술력은 더 놀랍다. 세계 최초로 챗GPT를 탑재한 반려로봇을 선보인 베이징 키아이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AI) 번역기 X1을 만든 타임케틀 등은 CES 혁신상을 받았다. AI를 적용한 4족로봇(유니트리), 지능형 수영장 청소로봇(싱마이), 잔디깎이 로봇(선전한양기술, 맘모션) 등은 중국 업체가 선점했다. AI, 로봇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중국 업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 경험 때문인지 아직도 중국이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착각이다. 글로벌 AI 지수에 따르면 중국(61.5점)은 미국(100점)에 이어 2위다. 한국은 6위(40.3점)에 그친다. 반도체 정도를 빼면 웬만한 첨단 산업은 한·중 기술 격차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중국이 앞선다. 반도체도 범용 시장은 중국이 이미 상당 부분 잠식했다.

중국의 기술 굴기는 이미 세계 산업지도를 뒤흔들고 있다. 중국 BYD는 지난해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전기차 판매 ‘넘버1’이 됐다. 전체 자동차시장에서도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처음으로 자동차 수출 1위에 등극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차의 약진은 거대 내수시장 덕을 본 것이지만 가성비가 높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자동차는 전후방 효과가 그 어느 산업보다 큰 산업이다. 중국이 차 수출 1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산업 생태계가 탄탄하다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지난해 대중 무역에서 1992년 수교 이후 31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점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과거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와 부품을 팔아 돈을 벌었고 자동차 휴대폰 화장품 등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이제 한국 소비재는 더 이상 중국시장에서 먹히지 않는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과 품질 경쟁력이 결코 한국에 뒤지지 않는다. 삼성 휴대폰과 현대자동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0%대로 떨어졌다. 중국이 안 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제품이 안 팔리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조선, 철강, 화학 등 주요 산업에서 승자가 됐지만 지금은 중국과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AI 등 미래 산업에선 중국이 이미 앞서고 있다. 기술이 산업 경쟁력은 물론 국가 안보까지 좌우하는 시대다.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 이번 CES를 둘러본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